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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히11:8-10 |
|---|---|
| 설교자 : | 배장섭 목사 |
| 참고 : |
아브라함의 믿음
본문말씀 히브리서 11장 8-10절
1. 서론
강남학원가 일대에 학습효과를 높인다는 음료수를 나눠 주기에 마셨다가 평생 헤어날 수 없는 마약의 덫에 걸린 학생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그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별의 별 영적 사기꾼들이 교묘하게 침투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도적질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더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제가 묻겠습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다 있습니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요. 이미 제 책에서 증명했던 것처럼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증명의 종교요 분별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절대 다수가 그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넘어 갔습니다.
그 뿐입니까? 성경에도 없는 이신칭의를 맹신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은 완전히 100% 사기입니다. 절대로 거기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건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부족하여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받도록 하실 목적으로 예수님이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능동적인 의를 획득하셔서 우리에게 그 의를 전가시켜 주셨다나 어쨌다나?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영원히 회개조차 필요없이 죄 지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구원파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주장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지금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 신학자들이 그 정도 분별력도 안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죄 지어도 전혀 상관없습니까? 그렇게 죄지어도 전혀 문제 없다고 말하면 무조건 100% 영적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왜?
자,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봄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2. 본론
먼저 히브리서 11장 8절 말씀에 보면 “믿음으로”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뭐라고요? 쉽게 말하면 믿음 때문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제가 어느 유명한 이신칭의 절대 신봉하시는 연세 많으신 목사님께 ‘그렇다면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까’라고 물었더니,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하하 그럼 뭐여^^ 그것은 이신칭의가 아니지^^ 이신칭의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애요^^ 아니 아시면서 어떻게든 끝까지 이신칭의를 놓지 못하시는 것 같았는데^^ 하기야 옛날에 어느 유명한 바울 신학 교수님이 ‘이신칭의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것도 이신칭의라고 하세요’라며 타협을 권고하셨는데, 실제로 어느 유명한 신학 교수님은 그렇게 타협을 하시더군요^^ 그 심정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어느 유명한 은퇴하신 신학 교수님께 제 책을 드렸더니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나는 절대 이렇게 못합니다. 이렇게 했다가는 죽습니다. 목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두 번이나 제게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이신칭의를 건드렸다가는 죽기 십상이지만 그렇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잖아요.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뭐라고 변명하겠습니까? “살고 싶어서 거짓말 했습니다”라고 변명하면 봐 주실까요? 그래서 저는 죽는 한이 있어도 그 때가 두려워 거짓말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애초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제가 그 분들을 욕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솔직히 그 분들이 저를 위해서 그런 권고도 해 주셨지만 왜 다들 진리를 알아도 진리를 말할 수 없는지 이 바닥의 습성을 좀 알아야 여러분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 루터 때 천주교를 보세요. 루터가 전부 다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를 죽이려고 안달이 났는데, 믿음이 신념으로 바뀌면 무서운 괴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역사가 증명하여 보여 준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신념으로 바뀌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믿고 싶다면 어떻게? 일사각오의 정신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진리를 정확하게 바로 알아야 됩니다. 왜? 헛된 죽음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기자가 본받으라고 제시한 믿음의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뭘 강조하고 있습니까? 순종이잖아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전적부패가 죄가 아니고 불순종이 죄입니다. 인간은 전적부패했기 때문에 의나 선을 일도 행할 수 없다는데, 지금까지 봤던 것처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헬라 철학 유출설에 근거하여 죄와 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조차 물질처럼 오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헬라 유출설이 잘못된 비진리일까요?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는데, 물질이 선합니까? 악합니까? 물질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런데, 유출설에서는 로고스에서 유출된 이 세상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그런 잘못된 유출설의 영향을 받아 전적부패한 인간은 일도 선이나 의를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적부패니 죄의 유전이나 의의 전가니 그런 모든 주장들은 다 사탄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성경은 불순종이 죄이며 순종이 의이며, 다른 사람에게 득을 끼치는 것이 선이며 남에게 해를 끼지는 것이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할 것을 강조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구구절절이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일도 행할 수 없다니 그것이 제 정신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죄 지어도 구원 받는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무조건 100% 영적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시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인간인지라 죄를 범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회개하면 정상 참작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쨌든 지금 이 말씀을 다시 보면 “순종하여” 그런 연후에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라는 말은 하나님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약속의 땅을 취하고 싶다면 그 약속하신 땅으로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그 약속을 믿기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이 주어집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자,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보여 준”이 아닙니다. “보여 줄 땅”입니다. 히필 미완료형을 썼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확하게 땅이 어디인지도 가르쳐 주시지도 않고 땅을 줄 테니까 그냥 무작정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느냐 하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헐^^ 헐이잖아요, 헐^^
아니, 그 정든 고향 땅을 떠나라고 하시면 그래도 최소한 주실 땅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 정확한 장소라도 가르쳐 주시고 떠나라고 명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도 가르쳐 주시지 않고 그냥 무작정 떠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헐’이 아닐 수 없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하나님은 그 정확한 장소를 가르쳐 주시지도 않고 무작정 떠나라고 하셨던 것일까요? 사실 거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명기 18장 9-14절에 보면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들을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을 하셨는데, 9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능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때 그냥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살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고 그 모든 민족과 백성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진멸하라고 명하신 이유를 말씀하신 것인데, 그것은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우상숭배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것은 대충 이해되는데, ‘진언자’는 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원문에 보면 ‘하바르’라고 해서 ‘비밀스러운 법문이나 주문’을 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와 비슷합니다. 이들은 전부 하나같이 무엇과 관련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상숭배 중에서도 특히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 것을 논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과는 다릅니다. 참 선지자들은 돈 때문에 예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언하다가 돌 맞아 죽기도 하고 톱질 당해 죽기도 하고, 어쩌면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지만 이런 우상숭배자들의 특징은 하나 같이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혹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솔직히 미래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잖아요^^ 왜?
단 한 시간 미래의 일을 알아도 인생은 엄청나게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복권을 산다든지, 주식을 산다든지 그럴 경우에 미리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 중에서도 마치 선지자처럼 미래 일을 예언할 수 있는 것처럼 성도들을 속여 돈을 갈취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당연히 거기에 상응하여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더 이상 하나님과 동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불과 한 시간 뒤의 일만 알아도 거기에 상응해서 대처하면 되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앞에서 봤던 것처럼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보면 “일 년치 양식을 주옵시고”라든지, “평생 먹고 살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시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일 년치 아니 평생 먹을 양식을 미리 주시면 얼마나 좋아^^ 든든하잖아요?^^ 그런데 왜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매일 매일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그 다음 9절에 보면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그런 연후에 그 다음 10절에 보면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쉽게 말해서 “바랐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소망을 가리키는데 그 소망을 좇아 사는 것이 당장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장막’이란 ‘스케네’라고 해서 우리처럼 이런 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천막’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런 불편을 고수하면서조차 그렇게 그곳에 거한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좇아 그 땅을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이 이신칭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불순종해야 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제가 볼 때 신학교가 문제입니다. 신학교 가기 전까지는 성도들이 나름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신학교 가고 나면 바뀝니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교리들 때문이지요.
3. 결론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제 책에서도 소개했지만 옛날에 제가 총신 Th.m 때 바울에 미쳐서 바울 신학과 관련된 책들은 닥치는 대로 읽으며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온통 바울로 가득 차서 바울 밖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온 세상이 어두움이 드리워진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 베드로와 바울의 십자가가 함께 서 있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베드로의 십자가 밑둥을 쳐서 무너지더니 또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이번에는 바울의 십자가 밑둥을 쳐서 그마저도 무너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남아 제게 클로즈 업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받은 느낌은 제 가슴이 아릴 정도로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무척 슬퍼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연후에 어디로 가는 길을 봤는데, 아무튼 제가 꿈에서 깬 후에 순간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제가 바울 신학을 전공하면서 바울 우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어디가고 없고 천주교 같은 경우에는 교황 즉 베드로 우상에 빠져 있고, 개혁주의는 이신칭의 즉 바울 우상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 그것을 제거해야 비로소 진짜 예수님이 보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바울 신학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때부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삶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말씀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놓치지 않고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주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그 이후부터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저절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더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현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바로 알고 믿는 성도들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단순히 대속의 제물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이고, 사실은 그 속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주목하고 알게 되면 왜 하나님이 그 고난의 십자가를 선택하셨는지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바로 알고 신앙생활 할 수 있게 되는데, 부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셔서 단 하나 뿐인 천하보다 귀한 영혼 절대로 후회함이 없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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