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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 궁극이............... 조회 수 20 추천 수 0 2023.09.02 18: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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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담후3:16-17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토요 교역자 대상 신학 및 성경공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만물을 만드신 것을 보여주는데, 같은 종류이면서 여러 가지 다른 모양새로 만드신 것도 보여주고, 같은 종류이면서도 사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 것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 전의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타락 후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것을 보여주고, 또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셔서 당신의 언행심사로 인간을 무슨 목적으로 지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주님을 보면서 창조의 목적을 알아야 하고, 그 속에 담긴 영적인 면을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 계:에서는 교회와 영물의 움직임을 보여주신다. :에서 보여주는 영물들은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있는 거다.

 

 

성경 전체적으로 보면 먼저 우리로 하여금 표면적 액면적인 활동을 보게 하고, 그다음에 계:로 가서는 사람의 활동 속의 마음과 정신과 소원과 목적의 움직임을 보고 영적인 면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을 보면서 창1:1부터의 사람의 움직임을 재조명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성경을 볼 때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면 이 활동 이전에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니 일이나 사람이나 행동이나 활동이나 단체의 움직임만 보지 말고 마음이나 이성이나 영의 움직임을 봐야 그 활동을 왜 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문자적 액면적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을 해야 온전한 순종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로 천국에서 당신과 함께 그 나라를 다스리고 누리게 하려는 것이니 모든 성경을 여기에 맞춰서 해석하고, 여기에 맞춰서 마음과 몸이 순종해야 온전한 순종이 되는 거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에 목적을 둔 순종이 아니면 참 순종이 아니다. 우리가 표면과 액면을 보지 않고 영의 눈을 가지고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움직이면 틀림이 없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할 때는 이 중심이 바로 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중심을 보시고 이리저리 인도하신다.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성경을 표면과 액면적으로 보기 때문에 90% 이상이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데, 지옥에 간 증거를 어디서 찾느냐? 자살해서 죽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주님이 차라리 나지 아니했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마귀니라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기도 한다.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마귀니라고 했는데, 사람인 가룟유다가 마귀냐? 마귀는 무형적인 존재인데, 이 마귀를 누가 만든 거냐? 가룟유다가 마귀라면 마귀가 유형적인 존재라는 것인데,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마귀는 하나님께서 만든 건데, 가룟유다가 처음부터 마귀라서 지옥에 갔다면 하나님께서 가룟유다를 애당초 마귀로 만들어 놓고 지옥에 보냈다는 말이 되니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선한 분도 아니고 공의로운 분도 아니다.

 

 

또한 차라리 나지 아니했으면 좋을 뻔했다고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하면 하나님은 가룟유다가 지옥에 갈 짓을 할 것을 모르고 창조했다는 말이 되니 무지 무능의 하나님이 되고 만다. 우리의 이룰구원을 놓고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성을 모르면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과 공의성을 아는 사람이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말의 이치가 가룟유다를 실컷 부려 먹은 후에 지옥에 보내는 주님으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 가룟유다를 등용한 것은 가룟유다와 같은 우리의 속을 보여줘서 고치라는 것인데 자기를 고치는 것은 없이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정죄만 하고 있으면 이 사람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고 기록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거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 전에, 창세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설정된 것인데,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지식적으로는 알지라도 실질적으로는 모르는 거다. 아무리 예수를 믿더라도 성경의 이치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사람이 망한다. 사업이 망한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망한다. 머리가 망한다. 우리는 사람이 망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가룟유다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았는데 오늘날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 정신은 첫째 계명부터 어긴 것이고, 가룟유다처럼 예수를 돈과 바꾼 거다. 이는 아무리 예수, 예수하고 성경을 시인해도 자기 속에 들어있는 신앙이라고 하는 질이 세상성이요, 물질성이요, 눈에 보이는 면에 두고 예수를 믿는 것이라서 우상을 섬기는 거다.

 

 

성경에 거룩한 곳에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는 이미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 앉을 자리에, 거룩한 곳에 물질성, 종교성, 사업성, 사람, , 재물을 올려놓은 것을 말한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거룩한 곳에 서지 못할 것이 선 것이 보이면 멸망이, 심판이 가까운 것이니 세권과 교권자들이 살고 있는 유대의 중심도시를 떠나서 산으로 올라가라는 거다. 즉 도의 봉우리로 올라가라는 거다. 말세지말인 오늘날 이런 게 안 보이느냐?

 

 

이방 세력의 손을 빌려서 예수를 죽인 공회원들은 율법이나 국가법을 어기고 죄를 지은 사람을 정죄하거나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권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은 순 물질성적 개념의 소원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가 이단이네, 누가 삼단이네하며 남을 정죄하는 사람이 있다. 정작 자신은 이단이 뭔지, 삼단이 뭔지, 적그리스도가 뭔지, 거짓이 뭔지 모르면서 다른 사람의 신앙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자신을 완전자요 절대시하는 셈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하나님 자리에 앉은 거다.

 

 

:에서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고 했는데, 사람을 억지로 공회에 넘겨서 죽게 하는 것도 있지만 공회에서는 성경 보고, 기도하고, 설교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곳이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기도 했다. 이런 공회에 데려가서 채찍질한다는 것은 사람을 붙잡아서 회초리로 때리는 것만 아니라 진리본질의 이치도 없는 말로 사람을 울렸다 웃겼다 하고,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도 사람을 때리는 거다.

 

 

또한 교회 인도자가 교인들에게 진리본질의 말씀은 주지 않고 일 충성봉사를 왜 안 하느냐?’고 하며 다그치는 것도 사람을 말로 채찍질하는 거다. 부흥강사가 집회하면서 의례 본교회 목사님을 하나님 모시듯이 잘 섬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충성이 아니다. 이치를 모르면 목사를 우상을 만들게 된다. 예수님 앞에서의 옳은 충성은 진리를 붙잡은 상태에서 자기 목숨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신앙정조를 지키는 게 충성이다. 우리는 책망을 하면서 사람을 권고 권면하는 것도 알아야 하고, 칭찬을 하면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걸 모르면 마귀에게 이용물이 된다. 귀신들 악령류에게 이용물이 된다.

 

 

주님께서 가룟유다에게 차라리 나지 아니했으면 좋을 뻔했다고 한 말씀을 액면 그대로 보면 가룟유다는 하나님이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났다는 말이 된다. 가룟유다가 정말로 스스로 영육 결합체로 났느냐? 누가 가룟유다를 만들었느냐? 하나님이다. 그리고 차라리 나지 아니했으면 좋을 뻔했다는 말씀이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는 말이라면 예수님은 가룟유다를 천국에 가게 하려고 불러서 가르쳤지만 지옥에 가게 되었다는 말이 되니 예수님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이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말대로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중간에 믿지 않기도 하고,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짓기도 하기 때문에 지옥에 갈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것에 대한 분명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이단자들이나 거짓된 종들에게 휘둘리게 된다.

 

 

주님께서 가룟유다가 마치 지옥에 갈 것처럼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주는 이룰구원에 관한 뜻이 있는 거다. 성경은 남 얘기가 아니다. 우리로 자기를 가룟유다와 비교해서 좋은 것은 본받고 잘못된 것은 고치라는 거다. 안 그러면 백날 믿어봐야 소용이 없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우리가 어떤 노력이나 수행을 해서 된 게 아니라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린 거다. 죽은 영은 스스로 살아나지 못한다. 다른 힘이 외부에서 살려주어야 한다. 이 책임을 주님이 지고 우리의 영을 살리셨다. 그리고 죽은 영을 살려놓은 후에 나를 따라가자하고 부르기도 하고 교육도 하시는데 이것은 이룰구원에 속한다.

 

 

주님께서 가룟유다에게도 이 기본구원을 입혔고 베드로에게도 이 기본구원을 입혔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자 베드로가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했고, 이에 베드로가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옵소서라고 했고,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라고 했다.

 

 

여기서 대부분의 목사님이 목욕하는 것은 기본구원을 말하는 거고, 발을 씻는 것은 이룰구원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성경이 다 틀리게 된다. 한 이치가 어그러지면 다 어그러진다. 나는 목욕하는 것과 발을 씻는 것을 다 기본구원을 얻은 성도에게 하는 말씀으로 보고, 목욕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소원 목적을 천국으로 정한 것을 말하는 거고, 발을 씻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소원 목적을 천국으로 정했지만 살아가면서 부분 부분에서 세상의 때가 묻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에게 내가 너의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한 말씀이 가룟유다가 기본구원을 얻지 못했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말씀은 가룟유다가 기본구원을 입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발은 자타의 구원을 위해 쓰임이 되는 주님의 일을 기관이니 자타의 이룰구원의 일이 아닌 세상의 죄 된 일을 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이룰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베드로의 경우 소원 목적을 천국으로 정했지만 주님이 죽을 지경이 되자 자기 목숨도 달아날까 봐 넘어진 거다. 목사님이라고 해도 자기의 이해타산을 천국이 아닌 세상에 둔 사람은 그 중심에 돈, 재산, 재물,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 들어있기 때문에 설교나 기도의 중점이 세상 넓은 길로 가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런 사람은 평신도이든 집사이든 장로이든 목사이든 목욕을 안 한 거다.

 

 

성경은 우리로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하려고 주신 것인데 이 성경을 여기에 맞춰서 풀지 않고 이방 불신자적 개념으로 풀면 반드시 일이 되고, 사람이 되고, 부자가 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붙이게 된다. 이런 것은 다 썩고 불타고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이런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이런 것을 구하라고 했다. 오늘날 설교에서 이런 말이 안 들리느냐?

 

 

믿는 사람이 천국 쪽으로 방향과 목적을 정해놓고 자기의 생각과 마음과 소원과 목적을 여기에 맞추어 가다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발을 씻는 것은 천국에 방향과 목적을 정한 마음이 변치 않은 상태에서 이룰구원 면에서 부분마다 잘못된 것을 고치는 거다. 서로 발을 씻겨주라는 것은 깨닫게 하고 이끌어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믿는 자로서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여러 번 걸려 넘어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마다 천국을 향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고치고 달리고 하면 결국은 천국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이게 없었던 것 같다. 주님께서 이런 가룟유다에게 처음부터 마귀니라고 한 것은 가룟유다는 아예 불택자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듣고 배웠으면서도 여전히 그 모양이냐?’ 하는 것을 강하게 표현한 말씀이다.

 

 

수십 년 예수를 믿었는데도 처음 예수 믿을 때부터 들어있던 세상 생띵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러면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봐도 마음과 정신이 천국 쪽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적인 설교를 하는 목사에게 진리 이치적으로 말을 해주면 이 말을 절대로 안 받는다. 오히려 당신처럼 교회를 하면 교회가 망한다라고 한다. 이게 주님의 종이 할 말이냐? 성경은 영적인 이치요 하나님은 질서정연한 분이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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