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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일기244-9.1】 50년 일기
산책을 하다 보니 길가에 아주 두꺼운 책이 한 권 떨어져 비에 젖은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나는 책을 들추어보았다. 1500쪽도 더 되는 책의 제목은 抗日志士成九鏞先生五十年日記(上) 항일지사성구용선생50년일기(상)
성구용 선생이 누구신가?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금남면 달전리에서 1905년에 태어나 1924년부터 1975년까지 50여년간 일기를 쓴 유학자이시다. 그 아들이 아버지 일기장을 두 권의 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그런데 왜 책이 길에서 비를 맞고 있을까?
○갑자년(1924년) 정월 1일 -별나고 밤에 구름이 가득차다. 이웃사람이 서로 모여 새해의 복을 비니 이는 사람들의 기쁨이다. 그러나 지금은 임금도 없어지고 나라도 망해 일본놈의 속국이 되었다. 온 세상사람들이 오랑캐들이 하는 짓을 경쟁적으로 본받고 성현의 도가 없어져가니 가슴 아픈 일이다.’
○‘경인년(1950년) 6월 27일(음력) -희미하게 별나다. 폭음소리가 산천을 진동하니 민심이 흉흉하고 공포에 싸여 농사일을 못하다.’
○4월 14일(음력) -맑다. 여러 종족과 함께 선조묘에 참사하고 저물어 달전에 돌아오다’
일기를 몇 개 읽어보니 재미있다. 주로 날씨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났다는 얘기가 많다. 익숙한 우리 동네 이름이 많이 나온다. 달전리와 대평리를 반나절이나 걸려서 오고 장을 보고 반나절 걸려서 집에 갔다니 대평장을 보려고 하루가 꼬박 걸렸구나. 지금은 자동차로 10분이면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그때는 걸어 다녔으니 참 먼 거리였을 것이다.
나도 평생 일기를 쓰면서 살았다. 그 일기가 다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판기로 두드려 쓴 일기는 그래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서 13권의 책이 되었다. 2015년부터는 1년에 1권씩 책으로 만드는 중이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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