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모세의 믿음

히브리서 배장섭 목사............... 조회 수 166 추천 수 0 2023.09.09 13:40:40
.........
성경본문 : 히11:24-26 
설교자 : 배장섭 목사 
참고 :  
모세의 믿음 본문말씀 히브리서 11장 24-26절
1. 서론
차들이 역주행하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체포 되었답니다. 왜? 자기가 역주행한 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역주행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웃픈 이야기지만 제가 볼 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는데, 묻겠습니다. 모세는 구원 받았을까요? 못 받았을까요?
이신칭의에 따르면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좇아 사는 것은 잘못된 율법주의 구원론이기 때문에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보면 불과 구약 족장 몇 명만 구원 받고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구원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어떤 바울 신학자는 “알고 봤더니 유대인들이 택함 받은 백성이 아니라 우리가 진짜 택함 받은 백성이었다”라고 주장했지만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율법은 하나님이 명하셨던 것이고, 모세는 단지 하나님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율법 언약을 체결하는데 언약의 중보자 역할만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뭐가 됩니까? 저주 받아 구원 받지 못하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던 것입니까? 이것만 놓고 봐도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문제는 비단 그 뿐이 아닙니다.
비록 칼빈은 불과 족장 몇 명만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여기 히브리 기자는 구원 받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 기자는 거짓말쟁이입니까?
그 뿐입니까? 창세기 17장 이하의 말씀에 보면 그렇게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족장들조차도 아브라함 이하 모든 유대인들이 바로 그 율법주의라고 정죄한 할례를 행한 것을 볼 수 있을 뿐만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조차 할례를 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조차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메시아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그 외에도 이신칭의 문제점이 무수히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신칭의를 믿으시는 분들은 순종해야 된다고 말하면 율법주의라고 정죄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그 점을 계속해서 ‘모세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봄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2. 본론
우선 먼저 24절 말씀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모세가 출생했을 때 바로 왕의 명을 어기고 그 모친 요게벳이 모세를 숨겨 키우다가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더 이상 집에서 키우기가 어려워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 강가 갈대가 우거진 것에 숨겨 두었더니 목욕을 하러 온 애굽의 공주에게 발각되지만 공주가 불쌍하게 생각하여 양자로 삼아 그 모친 요게벳을 유모로 삼아 키우게 됩니다.
노예의 자식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가 졸지에 그 막강한 애굽의 왕자가 되어 온갖 호의호식하며 왕자로서 부러움을 한 몸에 안고 즐거움과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마 천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행운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24절 말씀만 놓고 보면 그런 놀라운 은혜로 성장한 후에 장성한 사람이 되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는 것을 거절한 바로 그것을 히브리 기자가 믿음이라고 말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그것은 참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옛날에 중국의 어떤 사람이 전쟁 때문에 버려진 갓난 일본 아이를 비록 자기들을 공격한 백성의 자식이지만 불쌍하게 생각하고 자식처럼 키워줬더니 나중에 커서 자기는 일본인이라고 그 키워준 부모와 호적정리하고 연을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그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 전부를 배은망덕한 민족이라고 욕하는 것을 봤는데, 그와 같이 비참한 지경에 있던 그를 놀라운 신분으로 상승시켜 주고 자기를 키워준 은혜를 모르고 욕되게 하는 배은망덕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깊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된 것도 그냥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손길에 의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일본 고아의 경우에는 당시 중국인으로 살게 되면 당시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다 보니 일본인이지만 일본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일본 사람들에게 중국 사람으로 오해를 받아 일본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핍박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거기에 반해서 모세 같은 경우에는 이스라엘이 정복 국가가 아니고 오히려 당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손해가 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아무튼 키워준 은혜를 망각하고 연을 끊는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비난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24절 말씀만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직한 참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 다음 25절 말씀과 연결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무슨 뜻입니까?
익히 잘 아시는 것처럼 “더 좋아하고”라는 말씀은 비교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의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는 그 자체를 일본 고아처럼 그렇게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그 매몰차게 그 연을 끊어버린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라암셋 건축에 동원된 자기 형제 자매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애굽 감독관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었는데, 그 다음 날 유대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려다가 그만 애굽 사람을 죽인 사실조차 발각이 되어 바로 왕이 죽이려 하여 어쩔 수 없이 달아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유대인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고역을 당하지 않고 좋은 대우를 받았거나 유대인들이 애굽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모세는 결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 받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 기자가 말하는 모세의 믿음이란 비록 자기는 온갖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것을 모른 채 하지 않고 악과 대적하여 선뜻 도우려고 했던 그 모습을 참된 믿음의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말씀의 강조점이 무엇입니까?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옛날 일제 강정기 때나 6.25 사변 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자기 민족을 팔아먹고 고발하고 온갖 고문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디나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옛날 아우슈비치 수용소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갇혔을 때 독일 군인들보다 더 잔인했던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 중에서 유대인들을 감독하도록 뽑힌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는데, 옛날 일제 강정기 때에도 정말 목숨 걸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노력한 수많은 신사참배를 거절한 목사들을 고발하는데 앞장 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목사 장로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그런 파렴치한 자들이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목사님들을 다 쫓아내고 자기들이 교회를 차지해서 교단을 좌지우지 했습니다. 그것이 과연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람직한 참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종교를 통합을 주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는 분들은 눈에 가시와 같았겠지요. 여러분! 겉을 보면 안 됩니다. 그 중심을 봐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그 다음 26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로 봄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원문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말은 부사구가 아니고 소유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욕’이라고 해야 되는데, 쉽게 말하면 예수님처럼 그렇게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바로 왕처럼 그렇게 온갖 호의호식하면서 사람들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그렇게 그 백성들을 섬김으로 생기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말할 것도 없고 복음을 전하시는데 있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다르다 보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난을 피하고 자기 입신양명과 유익을 위하여 행하지 않고 기꺼이 그 모든 고난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셨던 것처럼 모세 역시 애굽의 왕자의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 그 축복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고 고난당하는 유대인을 돕다가 그 호의호식할 수 있는 그 놀라운 축복의 자리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라’는 명을 받아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수고를 기꺼이 감당한 이유가 뭐라고요? 하나님이 ‘상 주심을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누가 준 복? 세상이 준 복이나 다른 것으로 인한 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복을 받기를 원하고 기대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 삶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바른 자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복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모세 역시 복을 기대하고 그런 행동을 했지만 어떤 복을 기대하고 그렇게 했다고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대하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으로 인한 복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복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되는데, 예를 들어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신 318명을 이끌고 좇아가서 조카 롯과 소돔 고모라 사람들을 잡아 간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격파하고 돌아 왔을 때 소돔 왕이 찾아와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고 말했을 때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부자가 되게 만들었다)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하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면서 사람과 물품조차 다 줘 버리는데, 사실 소돔왕의 말처럼 아브람이 취한다고 비난 받을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그돌라오멜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요사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다 온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부동산 투기는 불노소득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주식 투자와 또 다릅니다. 왜? 주식은 그 투자한 돈으로 설비를 마련하여 생산할 수 있지만 부동산은 득을 본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부동산도 단순히 투자해서 정당한 생산을 할 목적이라면 그것은 괜찮지만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투기는 단순히 집에서 살기 위한 목적이나 상가 구입해서 장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가 그 주된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수고하고 노력하지 않고 번 불노소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아마 틀림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왜? 그런 불노소득을 노리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사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 우연히 복권을 주어지게 되었고 그 복권이 당첨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취하는 것조차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를 망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생각하고 초개를 보는 것처럼 멀리하고 차라리 다른 불쌍하게 사람에게 줘 버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마음에는 절대로 불로소득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도사리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3. 결론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면 혹시 비웃으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물질과 돈 때문에 부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돈과 관련된 상업이 무너짐으로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피눈물 흘리게 된다고 경고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말씀처럼 그렇게 앞으로 세상 돈에 집착하여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여기 저기 투자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세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 때문에 피눈물 흘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성도는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철저히 욕심을 죽이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돈을 초개와 같이 보고 검소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 돈과 욕심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하나님으로 인한 복을 기대하심으로 앞으로 다가 올 위기조차 잘 대처하심으로 저 천국의 영광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에서조차 후회함이 없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7888 고린도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고전1:1-9  정용섭 목사  2023-06-09 67
17887 시편 여호와께 예배하라! 시29:1-11  정용섭 목사  2023-06-09 133
17886 마태복음 나사렛 사람 마2:13-23  정용섭 목사  2023-06-09 61
17885 누가복음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2:1-14  정용섭 목사  2023-06-09 141
17884 로마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롬1:1-7  정용섭 목사  2023-06-09 84
17883 마태복음 구원의 징표 마11:2-11  정용섭 목사  2023-06-09 88
17882 사도행전 부 흥 행2;42-47  전원준목사  2023-06-08 99
17881 전도서 헛되고 헛된 인생 전1:1-11  강승호목사  2023-06-07 107
17880 사무엘하 (계시보기)법궤를 붙잡은 웃사가 즉사한 이유/외. 삼하6:7  김경형목사  2023-06-07 38
17879 히브리서 영적 전쟁의 승리비결(3):신앙고백과 인내 히10:32-39  배장섭 목사  2023-06-04 120
17878 누가복음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1-8  김경형목사  2023-06-04 98
17877 요한복음 아버지께서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2  김경형목사  2023-06-04 24
17876 창세기 (계시보기)드보라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묻은 이유/외/ 창35:8  김경형목사  2023-06-03 45
17875 사도행전 축복받는 교회의 지름길 행2;37-47  전원준목사  2023-06-01 168
17874 베드로후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라 벧후1:16-21  강승호목사  2023-06-01 75
17873 사무엘하 (계시보기)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외. 삼하11:4  김경형목사  2023-05-31 28
17872 마가복음 예수께 쫓겨난 귀신 막1:21-28  강승호목사  2023-05-31 72
17871 누가복음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눅18:1-6  김경형목사  2023-05-28 47
17870 요한복음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5:17-22  김경형목사  2023-05-28 34
17869 히브리서 영적 전쟁의 두 번째 승리 비결 : 앎이라 히10:32-39  배장섭 목사  2023-05-27 101
17868 창세기 (계시보기)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4  김경형목사  2023-05-27 45
17867 마가복음 은혜 받은 사람 막1:32-34  강승호목사  2023-05-26 208
17866 로마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롬8:5-8  김중곤 목사  2023-05-25 294
17865 사도행전 성령충만을 내게 주소서 ! 행2;1-13  전원준목사  2023-05-25 186
17864 마가복음 은혜 받은 가정 막1:29-31  강승호목사  2023-05-24 135
17863 예레미야 (계시보기)큰 그릇과 작은 그릇/외. 렘18:1-  김경형목사  2023-05-23 52
17862 히브리서 영적 전쟁의 첫째 승리 비결 : 생각하라 히10:32-39  배장섭 목사  2023-05-21 132
17861 누가복음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눅17:31-37  김경형목사  2023-05-21 59
17860 요한복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19  김경형목사  2023-05-21 134
17859 신명기 ‘쉐마’(שָׁמַע; 들으라) 신6:4-9  김중곤 목사  2023-05-19 190
17858 요한계시 (계시보기)내 속의 용을 잡아내야 한다/외. 계12:3  김경형목사  2023-05-19 41
17857 사도행전 다락방의 거룩한 모임 행1;12-28  전원준목사  2023-05-18 102
17856 요한계시 (계시보기)실물이 없는 용을 왜 성경에 기록했나? 계12:3  김경형목사  2023-05-16 43
17855 마가복음 복음을 믿으라 막1:14-15  강승호목사  2023-05-16 131
17854 에배소서 부모의 역할 엡6:4  배장섭 목사  2023-05-15 103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