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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무리가 따르니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54 추천 수 0 2023.09.24 09: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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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1-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1-5: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1-2: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디베랴지키다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또는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고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신 건가?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 도착을 하니 큰 무리가 형성이 되어서 예수님을 따랐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병인들에게 행하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항상 무리들이 따라다녔는데, 그 이유가 말씀이 좋아서, 깨달음이 되어서, 인간 자기의 존재가치가 알아져서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신기한 표적을 보려는 거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자들이 많다.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예수님께서 산으로 가시던, 들로 가시던, 바닷가로 가시던, 어디로 가시던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하는 게 제자로서의 도리다. 예수님께서 높은 산으로 같이 올라가자고 하실 때 올라가기 힘이 든다고 하며 따라가지 않는다면 제자가 아니다. 믿는 사람은 다 주님의 제자이니 자기의 마음이 늘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곳에 있어야 한다.

 

자기의 마음이 늘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시간적 장소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늘 하나님의 본질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의 본질에서 멀어지면 먼 것만큼 하나님과 뜻이 안 통한다. 뜻이 안 통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먼 거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런 면을 생각해야 한다.

 

가족들이 한 집에 같이 살아도 서로가 마음이 안 통하면 멀다. 생각과 마음과 취미와 소원과 목적이 다르면 거리가 먼 거다. 이러면 다른 사람과 사는 것과 같다. 기독교 가정은 소원 목적과 의사와 이해타산과 가치평가가 주님과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가 자기 기준에 맞추라고 하기 때문에 닭과 오리를 같이 묶어놓은 것과 같아서 늘 다툼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함께 앉으셨는데,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던 따라가야 한다. 이러려면 사건과 상황에서 인간의 표현으로 눈치가 빨라야 한다. 제자라면 주님과 늘 동거 동행 동식 동숙을 하면서 차원 높은 신앙의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신앙의 차원이나 지식이나 취미가 이적 기사나 바라는 무리의 성질을 가진 자는 높은 수준의 신앙에 앉지를 못한다.

 

믿는 우리는 창조된 목적이 주님과 함께 차원 높은 자리에 앉을 존재들이다. 그런데 네가 지금 어디에서 놀고 있느냐? 영능의 실력을 닦는 일은 하지 않고 낭비되고 소비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느냐?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산다면 너의 말년이 어떻게 되겠느냐? 믿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처신을 하면 세상은 이런 자기를 써먹고 내버린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가 차원 높은 신앙을 위해 살면 날로 날로 새롭게 만들어 주신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이 장면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느냐? 산에 오르려면 숨이 차고 힘이 든다. 주님과 함께 산에 오른다는 것은 차원 높은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을 말하는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을 높이 올려주시려고 사건과 환경을 동원하신다. 사건과 환경의 배후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시니 우리가 사건 환경을 만나면 그 배후에 계신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되어야 그 사건 환경을 왜 주셨는지 깨닫게 된다. 자기에게 닥친 사건에서 주님의 뜻을 못 깨달으면 자기 몸 밖의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에서는 주님의 뜻을 더 못 깨닫는다.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명절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명절이다. 언제부터 유월절이 생겼느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기 직전에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죽음이 넘어가게 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건데, 이 안의 내용을 보면 애굽의 정신과 사상과 소원과 목적과 취미성과 간구성과 추구성에서 해방이 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니 이것을 영적으로 말을 하면 선악과 따먹고 타락이 되어서 소원 목적이 세상으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어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안 믿는 사람들은 불타고, 없어지고, 썩고,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산다. 예수를 믿어도 세상 속화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산다. 이런 사람은 예수 믿어서 부자가 되자라는 정신으로 산다. 이건 마귀의 시험이다. 그런데도 자기가 신앙이라고 하는 정신 사상이 마귀의 가르침이고 마귀의 유혹과 미혹인지를 모른다. 우리는 선악과 따먹은 눈으로 보는 기준이 아닌 말씀에서 나온 구원이 기준이다. 자기의 이해타산이 구원이 기준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바리새인들의 누룩, 즉 교훈을 주의하라고 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란 눈으로 보이는 종교적 세상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들의 기준은 육이요 육의 생각이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는 것은 영인성장으로 사람이 만들어지는 거다.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큰 무리가 예수님께 오는 것을 보면 구약시대의 사건들이 생각이 난다. 또한 본 절의 일 후에 곧이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무리들에게 떡을 먹이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구약에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온 사건이 생각이 난다.

 

본 절의 말씀을 보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와서 시내산의 말씀성을 넣으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를 먹게 한 장면이 생각이 나면서 이것은 구약 때 예수님께서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시면서 모세로 통해 생명과인 영생의 하늘의 말씀을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는 일이 그림자냐, 모세가 하는 일이 그림자냐? 예수님은 실상이다. 장차 당신이 오셔서 그렇게 하실 거라는 것을 모세로 통해 보여주는 거다.

 

본 절의 예수님께 나온 무리들은 과거에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처럼 광야교회라고 할 수 있다. 광야교회는 정신 사상 면에서 항상 애굽을 탈출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즉시 탈출이다. 어제도 탈출, 오늘도 탈출, 내일도 탈출, 죽을 때까지 탈출을 하는 게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오늘만 탈출을 하고 내일에 가서 그걸 가지고 있으면 탈출이 아니다. 말씀준행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계속 탈출을 하면서 말씀의 인도대로 어디든 간다. 우리의 신앙도 이래야 한다. 이게 이룰구원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본문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까? 내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할까, 전혀 다르게 생각을 할까? 하나의 역사로만 볼까, 이 역사 속에서 현재의 자기의 신앙정신을 발견할까?

 

구약 때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로 나온 많은 무리들 중에는 모세가 행하는 이적과 기사와 표적을 보고 모세를 따라 나온 무리들이 있었듯이 본문도 보면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고 예수님께 나온 자들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이적과 기사를 보고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많다. 모세가 이적 기사를 행하는 게 신기해서 이걸 보려고 따라 나온 믿음이 없는 자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생활이 좀 어려우면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상 것이 잘 되기 위해 예수를 믿는 자들은 자기의 계획대로 안 되면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예수님 당시에 유월절 절기를 지키러 온 자들 중에는 자신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탈출을 해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고생만 한 것으로 기억을 하지 그 역사가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죄에 노예생활을 하는 자기를 해방을 시켜주시려는 차원 높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자가 몇 명이나 있었을까?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는 죄 사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건지, 예수님 당시에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 중에 예수님의 이적 기사를 보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건지? 이적 기사를 보고 쫓는다는 것은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다는 거다. 이건 바른 믿음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영의 눈으로 판단해 볼 때 내 믿음은 어느 쪽이냐? 기도할 적마다 세상적인 자기의 뜻을 들어달라고 한다면 이건 이적 기사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세상의 기도요 믿음이 없는 기도다.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광야에서 다 죽었다. 죽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는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다는 말이고, 현실에서는 그런 신앙정신은 신령천국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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