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어여 어서 올라오세요

대청마루(자유게시판)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당당하게

묵상나눔 Navi Choi............... 조회 수 39 추천 수 0 2023.11.18 12:22:19
.........
당당하게
욥기 13:20~14:22
욥은 당돌해 보일 정도로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내가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내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있습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피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원수로 여기십니까? 주님께서는 줄곧 나를 위협하시렵니까?”(13:22~25) 아무리 허물과 죄가 없는 욥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 아뢰는 말이 지나쳐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의 이런 말을 듣고 언짢아 노하셨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욥이 하는 당돌한 말들을 들으며 흐뭇해하지 않으셨을까요. 욥의 말은 온갖 죄를 저지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불한당의 자기변명이 아닙니다.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법에 문외한을 겁박하는 법 깡패의 윽박지르기와도 결이 다릅니다. 힘 앞에 온갖 굴욕을 당하면서도 항변 하나 못하는 불쌍한 민초의 무능도 아닙니다. 욥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인생이 살아갈 날 수는 미리 정해져 있고, 그 달 수도 주님께서는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정하셨습니다”(14:5). 그러면서 자신을 호되게 다루시는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맞서 질문합니다. 도대체 그의 이런 배짱과 담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역사에는 이유 없이 고난에 처한 이들이 많습니다. 1761년 프랑스 툴루즈의 위그노 장 칼라스는 사회적 신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아들의 일로 존속살해죄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평화를 추구해야 할 종교가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증오를 증폭시켰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일이지만 이 사건으로 프랑스 사회에 톨레랑스(관용) 의식이 확장되었습니다. 톨레랑스란 정치와 종교와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자는 이념입니다. 볼테르는 사회의 양심을 깨우는 《관용론》을 썼고, 화가 드바 퐁상은 <우물을 탈출하는 진실>을 그려 권력과 법과 종교를 비판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그것을 말할 권리를 위해 나는 당신 곁을 지키겠다’는 말도 이런 맥락입니다. 장 칼라스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1786)이 가능할 수 있었던 한 이유이기도 하였습니다.
드레퓌스 사건도 그렇습니다. 보불전쟁(1870~1871)) 이후 프랑스는 군국주의와 반유대주의 열풍에 사로잡혔습니다. 1894년 프랑스 포병 대위 드레퓌스가 간첩죄로 체포되었습니다. 드레퓌스의 필체가 독일 대사관에 빼돌린 비밀문서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유대인인 드레퓌스는 무리하게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남아메리카 악마섬에 갇혔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1897년 진범이 잡혔지만, 군부와 정부는 신뢰 추락을 이유로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이때 에밀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썼고, 많은 지성인들이 탄원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군부 개혁을 일으켰고, 공화정을 안착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우리 주변에도 상을 받고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거짓 선동과 음모론자들에 의하여 모욕과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속상하고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걸어온 길이 진실이라면 욥처럼 당돌해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당당하게 믿었습니다.
주님, 이유 없이 남을 해치며 악행을 일삼는 악인들을 징벌하여 주십시오. 고난에 처한 의로운 이들이 겸손한 자세와 더불어 당당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2023. 11. 18 토
402173630_24143618758586086_1675215736860919875_n.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374 묵상나눔 좁혀질 수 없는 생각 file Navi Choi 2023-11-29 10
12373 걷는독서 [걷는 독서] 내 인생에 단 하나의 file 박노해 2023-11-28 17
12372 묵상나눔 무지 file Navi Choi 2023-11-28 14
12371 가족글방 서구를 몰락시킨 세 가지 Wave file 최광희 2023-11-28 15
12370 걷는독서 [걷는 독서] 하루하루 더 나아진 내가 되는 만큼 file 박노해 2023-11-27 14
12369 묵상나눔 신앙이 힘이 되지 않을 때 file Navi Choi 2023-11-27 14
12368 걷는독서 [걷는 독서] 옳은 일이라면 file 박노해 2023-11-26 16
12367 가족글방 빈센트에게 교회란 무엇인가? file Navi Choi 2023-11-26 12
12366 묵상나눔 악인에게 관대하신(?) 하나님 file Navi Choi 2023-11-26 14
12365 걷는독서 [걷는 독서] 많은 길을 걸으며 file 박노해 2023-11-25 15
12364 묵상나눔 교리의 사람 file Navi Choi 2023-11-25 8
12363 걷는독서 [걷는 독서] 겨울의 길목에서 file 박노해 2023-11-24 13
12362 묵상나눔 욥의 하나님 인식 file Navi Choi 2023-11-24 18
12361 걷는독서 [걷는 독서] 현실의 중력과 압력 속에서 file 박노해 2023-11-23 20
12360 묵상나눔 발상의 전환 file Navi Choi 2023-11-23 28
12359 걷는독서 [걷는 독서] 원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닌 file 박노해 2023-11-22 34
12358 묵상나눔 맥락 file [1] Navi Choi 2023-11-22 26
12357 묵상나눔 [걷는 독서] 말 없는 격려 file 박노해 2023-11-21 34
12356 묵상나눔 file Navi Choi 2023-11-21 26
12355 걷는독서 [걷는 독서] 눈앞의 승리에 쫓기기 보다 file 박노해 2023-11-20 24
12354 묵상나눔 자기 잣대 file Navi Choi 2023-11-20 29
12353 걷는독서 [걷는 독서] 쾌락과 재미에도 file 박노해 2023-11-19 37
12352 가족글방 섶-아버지 집 file Navi Choi 2023-11-19 37
12351 묵상나눔 진리 편에 서는 일 file Navi Choi 2023-11-19 32
12350 걷는독서 [걷는 독서] 나의 가을은 file 박노해 2023-11-18 33
» 묵상나눔 당당하게 file Navi Choi 2023-11-18 39
12348 걷는독서 [걷는 독서] 최선을 다하고도 결과가 좋지 않다 해도 file 박노해 2023-11-17 51
12347 묵상나눔 질문 없습니까? file Navi Choi 2023-11-17 34
12346 걷는독서 [걷는 독서] 내 인생의 진정한 소망이 있는가 file 박노해 2023-11-16 27
12345 묵상나눔 우정 file Navi Choi 2023-11-16 17
12344 걷는독서 [걷는 독서] 잘하라고 말하진 않겠다 file 박노해 2023-11-15 16
12343 묵상나눔 공감능력 file Navi Choi 2023-11-15 19
12342 걷는독서 [걷는 독서] 외부의 관심에는 조금 초연하게 file 박노해 2023-11-14 13
12341 묵상나눔 한(恨) file Navi Choi 2023-11-14 9
12340 가족글방 선한 이웃으로 살아가기 김요한 목사 2023-11-14 15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