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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3081010590954070 

[유재경 교수의 수도원 탐방기] 생 갈렌 수도원(Abbey of St. Gall)

특집부 weekly@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3-08-11 

 

갈루스 금욕 생활 도운 '곰 상징물' 산재…움막 있던 곳 그의 이름 딴 수도원 건립

베네딕트 규칙 준수한 로마네스크 양식

로코코 건물 도서관 천장에 프레스코화…'둔필승총' 정신 필사본 기록 후대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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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갈렌수도원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었다. 612년 아일랜드 수도사 갈루스가 처음 이곳을 발견하고 도시의 기반을 다졌다. 당시 곰이 도와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수도원과 도시 곳곳에는 곰의 문양과 상징도 함께 있다.사진은 수도원 교회 모습.

 

흔적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생 갈렌 수도원은 생 갈렌시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도심 속에 우뚝 서 있다.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은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이든, 멈추어 바라보는 사람이든, 모든 이의 마음에 위안을 준다. 우뚝 솟은 수도원 교회와 도서관 그리고 몇몇 부속 건물들. 명망 높던 학문의 전당의 모습도, 베네딕트 규칙에 따라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세계를 추구하던 수도승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생 갈렌이 시작된 생 갈렌 수도원, 중세 유럽의 문화를 고스란히 전해 준 수도원 도서관. 생 갈렌 수도원은 흔적을 통해 과거를 되새기게 하고, 기록의 창을 통해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 같았다.

 

◆수도승 갈루스 이름을 딴 수도원

 

생 갈렌 수도원을 찾기 위해 북동쪽 알프스 산맥을 향해 달렸다. 그곳은 아인지델른 수도원에서 멀리 않는 곳이었다. 생 갈렌은 700m나 되는 높은 산지에 있지만 인구가 7만이 넘는 도시였다. 아펜첼 알프스 산맥의 골짜기에 형성된 도시라 그런지 도심에는 평지보다 언덕이 더 많았다. 구시가지에는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골목을 따라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하늘을 향해 나란히 들어선 건물은 과거의 명성을 자랑이라도 하듯 화려했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자 넓은 광장 한 복판에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듯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이 나타났다. 생 갈렌 수도원 교회였다. 회색빛 건물에 둘러싸인 파란 잔디 밭, 그 중앙에 수도원 교회는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생 갈렌시와 생 갈렌 수도원 기원은 한 아일랜드 수도승, 갈루스(Gallus)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아일랜드 수도승 갈루스는 612년에 유럽 대륙에 수도원 설립을 위한 콜룸바누스(Columbanus)의 야심찬 계획에 동참했다. 콜룸바누스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을 거쳐 선교했지만 마지막에는 이탈리아 북부에 보비오 수도원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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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갈렌수도원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었다. 612년 아일랜드 수도사 갈루스가 처음 이곳을 발견하고 도시의 기반을 다졌다.그의 이름을 따서 생 갈렌이다.

 

갈루스는 건강 문제로 스승 콜룸바누스의 선교 여정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는 홀로 곰과 늑대가 득실대는 알프스의 깊은 산속, 슈타이나흐 계곡에 움막을 짓고 금욕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이 그의 이름을 딴 생 갈렌이다. 전설에 따르면 갈루스의 기도와 깊은 영성에 감명을 받은 곰이 매일 빵 한 덩이와 장작, 각종 열매들을 가져와 그를 섬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생 갈렌시 곳곳에는 장작을 든 곰 상징물이 많다. 나는 곳곳에 산재한 곰의 상징물, 수도원 모양의 빵 등을 감상하며, 기도하는 사람의 힘을 생각했다. 갈루스 사후, 그의 제자들은 움막에서 콜룸바누스 수도 규칙에 따라 '기도', '노동', '독서', '교육'을 하며 그곳에서 함께 생활했다.

 

◆베네딕트 수도 규칙에 따른 공간

 

갈루스의 움막이 있던 곳에 오트마(Othmar)는 720년경에 수도원을 세워, 그의 경건을 기렸다. 그런데 생 갈렌 수도원의 초대 수도원장 오트마는 갈루스 성인이 따랐던 콜룸바누스의 수도 규칙이 아니라 베네딕트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건립했다. 콜룸바누스 수도 규칙을 따르던 수도 공간이 베네딕트 수도규칙을 따르는 공간이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오트마는 이곳에 로마네스크 주두로 장식된 돌기둥이 지붕을 지지하는 수도원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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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갈렌수도원 부속건물

 

생 갈렌 수도원은 카롤링거 시대의 수도원 개혁과 더불어 황금기를 맞았다. 경건왕 루도비쿠스(Ludovicus Pius)는 베네딕트 수도원 개혁을 위해 816년과 817년 아헨에서 교회회의를 열고, 수도승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규칙인 "수도회 참사규칙"(Capitulare Monachorum)'을 공표하게 된다. 수도원 개혁 운동은 베네딕트 수도 규칙에 따라 수도승들이 수도원 본래의 모습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 당시 생 갈렌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고즈베르트(Gozbert, 816-837)는 수도원 전체를 새로 건축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830년에 건축을 시작해 837년에 완성했다. 고즈베르트는 베네딕트 수도 규칙을 실천할 가장 이상적인 건물을 짓고 싶었다. 설계는 라히헤나우(Reichenau) 수도원장인 하이토(Haito)가 맡았다.

 

그는 건축과 정원 설계에 천재적 감각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이토는 베네딕트 수도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수도원장직까지 내려놓은 사람이었다. 그가 베네딕트 수도 규칙에 따른 이상적 공간을 설계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생 갈렌 플랜'(The Plan of St. Gall)이다.

 

'생 갈렌 플랜'에 나타난 수도원은 40:40 모듈에 따라 계획했고, 황금률의 비례를 사용했다. 수도원 회랑은 정확히 100평방피트이고, 기둥, 아케이드 등의 배치는 규칙적이고 정확한 대칭을 이루게 했다. 하이토는 신플라톤 철학의 미학에 기초해 정사각형 회랑을 설계했을 정도로 건축에 혼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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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갈렌수도원 교회 내부 천정 모습.

 

◆모든 것을 영적으로 생각하라

 

그는 생 갈렌 수도원 건축 설계도를 고즈베르트 수도원장에서 보내면서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영적으로 생각하라"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 나는 하이토의 편지를 접하면서 자문했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세상을 대하고 있는가'.

 

나는 생 갈렌 수도원의 역사를 더듬으며 수도원 교회에 들어왔다. 수도원의 가장 깊고 영적인 장소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도원 교회는 좌우 대칭을 이룬 건물로 안정감을 주었다. 교회당 제일 앞쪽에 있는 제단을 향해 나아가자 금박철책이 나를 막았다. 그곳은 수도승의 자리였다.

 

나는 더 깊은 곳, 더 영적인 곳에 들어가고 싶었고, 그곳에서 기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앉고 설 자리는 있는 법이다. 나는 천장의 화려한 프레스코화 아래서, 아치형 창문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잠깐의 기도였지만 여행자의 마음에 안식이 찾아드는 느낌이었다.

 

생 갈렌 수도원 교회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수도승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베네딕트 규칙을 철저하게 엄수했던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프랑스 솔렘 수도원, 세낭크 수도원 등에 머물면서 성무일도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 솔렘 수도원의 수도승의 하루는 중세 수도승의 하루와 유사한 것 같았다.

 

카롤링거 시대 '생 갈렌'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오전 2시에 '밤 기도'를 위해 오전 1시 30분에 일어났고, 오후 8시 15분이 되어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는 기도, 독서, 노동, 식사로 가득 채워졌다. 정말 고단하고 힘든 삶이었다. 수도승은 그곳에서 수도 공동체의 의무를 성취하기 위해 극기(克己)했지만 그들은 이보다 거룩한 삶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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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갈렌수도원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생 갈렌 수도원에서 생활했던 베네딕도 수도승들의 삶을 생각하며 수도원 뜰을 돌아 동쪽 건물을 향했다. 나는 유명한 생 갈렌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은 외관이 너무 평범하고 소박했다. 이 도서관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하지만 도서관에 들어가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생 갈렌 도서관의 가치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도서관의 바로크 홀은 1767년에 완성되었는데,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코코 건물이다. 천장은 온통 성경 내용을 프레스코화로 표현해 놨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연결된 목조 책장들엔 고서들로 가득했다.

 

나는 2층 도서관에 올라가자마자 수많은 책과 로코코 양식의 아름다운 서재에 빠졌다. 잠시 옆을 돌아보니 도서관을 지키는 아시아계 청년이 서 있었다. 나는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세계에서 필사본이 가장 많은 곳, 천년이 넘은 필사본만 400권이 넘는다고 했다.

 

필사본이 400권이 넘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필사를 통해서라도 기록을 남기려했던 중세인들의 정신과 문화가 새삼 경이로웠다. 이들도 "천재의 총명함보다 둔재의 기록이 낫다"는 둔필승총(鈍筆勝聰)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수도원 학교에 몰려왔던 중세기의 학생들은 이렇게 손으로 기록된 시편을 외우고, 바울 서신을 외우면서 첫 학문의 길에 들어오고, 더 높은 학문의 세계로 나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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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갈렌수도원

 

나는 필사본과 희귀한 책을 보며, 생 갈렌 수도원이 배출한 중세의 명사들을 더듬어봤다. 리에주의 주교 노트커(Notker of Liege), 대학자 노트커 라베오(Notker Labeo), 건축가 투오틸로(Tuotilo) 등. 생 갈렌 수도원 학교는 독특한 교육 방법,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중세 교육은,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태도였다.

 

생 갈렌 수도원 교사(magister)들은 무한책임을 지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학생들의 지성뿐 아니라 영성까지 책임을 지고 있었다. (Not only was he in charge of the intellectual welfare of the pupils, but also of their spiritual well being) 나는 수도원을 걸어 나오며, 수도원은 단지 영혼의 약국만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2023071314070438415_s.jpg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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