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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imaeil.com/page/view/2023090711572859332 

 [유재경 교수의 수도원 탐방기] 오트리브 수도원(Hauterive Abbey)

특집부 weekly@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3-09-08

로마네스크풍 아름다운 수도원…세상 밖 숨어 있는 외진 곳 자리

이목 끄는 구조물 대신 비움 원칙…나의 공간 어떤 복음 정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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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리브 수도원은 도시 근처에 있지만 철저히 숨어 있고, 안내자 없이는 수도원 출입이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시토 수도회의 이상을 지켜오고 있다.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는 수도승을 "그리스도의 학교"라는 한 마디로 정의했다. 수도승은 참된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몸소 가르친 사랑을 배우고, 두려움으로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걷는 자들이다. 수도원의 역사는 초세기 기독교 역사와 함께 했고,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사막을 넘어 유럽에까지 확산되었지만 수도승을 이렇게 신박하게 정의한 사람은 없었다.

 

시토 수도회는 이러한 베르나르도의 정신에 따라 자기들의 정체성을 '그리스도 학교 안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데'서 찾았다. 베른 남서쪽 프리부르 근처에 있는 시토 수도회 소속, 오트리브 수도원을 향했다. 프리부르는 스위스 고원지대를 흐르는 사린강 주변에 위치한, 중세의 모습을 아름답게 잘 간직한 대학 도시로 베른에서 남서쪽으로 27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빡빡한 일정 탓에 유서 깊은 중세 명소, 프리부르는 방문하지 못한 채 수도원을 찾았다. 잘 포장된 도로에서 벗어나자 길은 좁고, 미로 같았다. 얼마를 달렸을까, 우리 앞에 이상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몇몇 가족들이 물놀이 기구를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 깊은 숲 속에서 수영복 차림의 아이들과 물놀이 기구를 보다니 생뚱맞았다. 하지만 그제야 우리가 달리는 숲 아래쪽으로 사린강의 지류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프리부르를 지나 잠시 달렸을 뿐인데, 우리는 깊은 산과 숲에 갇혔다. 좌우를 구분할 수 없는 깊은 숲 속 길, 그 오른쪽에 중세의 오두막이 하나 나타났고, 그 반대편에 오트리브 수도원이라는 간판 하나가 서 있었다. 수도원 입구였다. 그럼에도 오트리브 수도원은 여전히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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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이름인 오트리브(Hauterive)는 라틴어 '알타 리파'(Alta ripa)에서 왔고, 그 뜻은 높은 제방이다.

 

◆시토 수도회의 이상을 지켜

 

오트리브 수도원은 지리적으로 역설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시토 수도승들은 세상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세상 밖의 공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사람과 떨어진 공간을 찾았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토 수도회의 이상을 지켜왔다.

 

오트리브 수도원은 도시 근처에 있지만 철저히 숨어 있었고, 안내자 없이는 수도원 출입이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다. 주위에 도시와 마을이 있어도 오트리브 수도원은 이국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알프스 중심에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오두막 출입구를 지나자 언덕 아래쪽에 로마네스크풍의 아름다운 수도원이 앉아 있었다. 수도원 앞에서는 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엔 작은 언덕이 마치 펜스를 친 것 같이 둘러싸고 있었다. 버려진 땅을 개간해 옥토로 만들었던 초기 시토 수도승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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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리브 수도원

 

수도원의 이름인 오트리브(Hauterive)는 라틴어 '알타 리파'(Alta ripa)에서 왔고, 그 뜻은 높은 제방이다. 수도원은 1132-1137년 사이 윌리엄(기욤) 드 글란느(William(Guillaume) de Glane)가 땅을 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사를르 수도원(Cherlieu Abbey)은 수도원장 게하르트(Gerhard)와 더불어 12명의 수도승과 몇몇 형제들을 오트리브로 보냈다. 설립자인 글란드 역시 수도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수도원 교회는 1150년과 1160년 사이에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재한 시대에 지어졌다. 오트리브 수도원은 12세기 초부터 번창하기 시작해, 12세기 후반에 오트리브 수도승들은 취리히 근처에서 카펠(Kappel) 수도원을 개척했다. 운하 건설과 더불어 수도원은 여러 개의 곡물 공장과 제지 공장을 지었다. 제지공장은 수도원의 도서관과 문서실 역할을 했다. 13세기 오트리브 수도원에는 40여명의 수도승과 50여명의 평신도 형제들이 함께 살 정도로 큰 수도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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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리브 수도원의 엄격함은 건축 디자인과 구조, 그리고 장식의 단순성으로 나타났다.

 

◆시토 수도회 정신을 건축에 담아

 

14세기 15세기에 수도원은 고딕 성가대석의 격자 창문과 스테인드글라스 장식 등을 통해 아름답게 꾸며졌다. 그러나 다른 수도원들과 달리 오트리브 수도원과 교회 건물은 시토 수도회의 정신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수도원은 화려하지도 돋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수도원 이곳저곳을 둘려보며 시토 수도원 건축의 원형인 "베르나딘 패러다임(Bernadine paradigm)"이 남아 있는지 찾아봤다.

 

건축에 문외한이지만 수도원이 내품는 '단순성'에서 "베르나딘 패러다임"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핀란드의 건축가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aa)의 말이 떠올랐다. "심오한 건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완전히 체화된 동시에 영적인 존재임을 경험하도록 해준다."

 

오트리브 수도원의 건축도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베네딕트 수도규칙의 엄격함과 비움의 정신에서 건축의 원초적 정신을 발견했다. 시토 수도승들은 수도원 전통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형식과 질서'를 따르려는 원칙이 있고, 철저히 그 원칙에 따르고자 했다. 시토 수도승들은 행동, 생활양식, 음식문화, 건축과 예술도 그 원칙을 따랐다.

 

수도원 높은 탑, 포장 도로, 스테인드글라스, 그림, 조각, 이미지와 같이 불필요한 새로운 것,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구조물은 거부했다. 오트리브 수도원의 엄격함은 건축 디자인과 구조, 그리고 장식의 단순성으로 나타났다. 오트리브 수도원 교회는 기하학적 비율, 순수한 형태, 고품질의 석재 조각, 우수한 음향과 조명의 조합이다.

 

이러한 조화는 결국 예배의 단순성을 향해 있고, 성도들이 흐트러짐 없이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데 있다. 시토 수도회는 어떤 시대에, 어디에서 건축을 하든지 그들의 건축에 그들의 정신을 담았다. 나는 오트리브 수도원 건물 외벽, 첨탑, 회랑을 돌아보며 시토 수도승들의 정신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 우리 신학교의 도서관, 교실, 교회당에는 어떤 복음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지 자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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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리브 수도원은 침묵에서 나오는 고요로 가득했다. 그것은 적막에서 나오는 쓸쓸한 고요가 아니었다. 나는 침묵에서 나오는 이 고요를 만나기 위해 오트리브 수도원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속에 하나님을 찾아

 

수도원 내부는 고요의 공간이었다. 수도원 바깥에서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도원 안으로 성큼 들어섰지만 그곳에도 깊은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도 말을 잃었다. 그러나 교회당의 동쪽 끝 제단 앞에 웅장한 고딕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빛은 살아 있었다. 그 빛은 화려함으로 우아함으로, 그리고 우리 마음을 가라앉히는 고요함으로 다가왔다. 수도원은 그렇게 깊은 고요에 젖어 있었다.

 

수도원은 수도승들이 생활하는 곳이고, 다양한 손님들을 환대하는 공간이다. 수도원 교회에서 만난 몇몇 수도승과 방문객, 우리는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긴 복도를 따라 걸으며 수도생활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했다. 수도승은 밝은 미소로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수도원은 고요했고, 내 정신 또한 또렷하게 깨어 있었다.

 

세상의 소리가 깊은 고요에 묻힌 것 같았다. 소리까지 흡수해 버린 이 깊은 고요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공간이 주는 힘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시토 수도승들의 깊은 침묵에서 나오는 힘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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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리브 수도원 정원

 

시토 수도승은 침묵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시토 수도승은 3가지 이유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 수도 공동체 안에서 대화가 필요할 때,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지도가 필요할 때, 특별한 경우의 자발적 대화. 시토회 수도승들은 일과 설교, 자선의 의무는 없지만 내면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침묵의 더 큰 의무는 있었다. 이집트 사막의 영성이 침묵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듯 시토 수도승도 침묵 안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시토 수도승들이 왜 그렇게 침묵을 강조했는가. 그들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했다. 사실 침묵 없이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깨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고, 침묵 속에서 하늘의 별처럼 항상 깨어 있을 수 있다.

 

현대인들은 대화적 존재이다. 대화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많은 대화가 우리를 평안과 안식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렇다. 말이 오히려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그래서 성경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10:13)고 했다.

 

오트리브 수도원은 침묵에서 나오는 고요로 가득했다. 그것은 적막에서 나오는 쓸쓸한 고요가 아니었다. 나는 침묵에서 나오는 이 고요를 만나기 위해 오트리브 수도원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침묵 앞에 아르세니우스(Arsenius)의 말이 떠올랐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떠나라. 하나님을 음성을 듣기 위해 내적 외적 침묵에 머물러라. 하나님 안에 안식을 누리기 위해 마음과 정신을 고요하게 하라."

2023071314070438415_s.jpg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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