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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관련한 상식: 여관과 구유>

아기 예수의 탄생 장소로 베들레헴을 꼽는다. 눅2:7절을 참조해보면, 예수님의 부모가 베들레헴에 왔지만 그곳에 있는 “여관”들이 손님들로 가득 차 방이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 여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 동네 고급 호텔 같은 것은 아닐테고, 혹시 우리가 아는 그런 ‘여관’일까?
당시 베들레헴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여관”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영 거슬린다. 지리적으론 베들레헴은 무척 작은 촌동네이기에 영업용 여관이 있을 필요가 없고, 게다가 여기서 예루살렘까진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이라서 걸어서 한 시간이면 도달할 거리이니 누가 이런 촌구석에서 여관을 찾겠는가?
‘여관’이라하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만난 이를 치료하고 맡기는 본문에서 만날 수 있는데, 그 비유에 나온 여관(pandokeion)과 베들레헴 여관(kataluma)은 엄밀히 다르다.
추측컨대, 요셉이 곧 해산할 아내를 위해 이집저집 문을 두드리며 급히 출산할 자리를 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때 구하며 다닌 여관이 본문에서 kataluma이다. 이 단어가 사용된 성경 본문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곳에 바로 이 단어가 사용된다. 복음서에 따르면(막14:14,눅22:11), 이곳은 여관이 아니라 그냥 게스트하우스로 부르는 ‘객실’ 정도이다.
그리고 kataluma가 특별한 것은 다른 번역도 가능한다는 점인데, 영어로는 upper room이니 윗방 또는 다락방으로도 변환할 수 있다. 실제로 1세기 베들레헴 사람들의 주거 형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집 형태가 아니라 지면을 약간 파고, 진흙과 석회를 섞어 동굴처럼 만들어 살았다. 그렇게 만든 덕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는데, 지붕위에 올라가서 그곳에 경작하거나 쉴 수도 있었다. 이런 동굴집은 통상 2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래층은 양과 염소 같은 가축의 공간이고, 윗층은 사람이 살았다.
요셉이 이집저집 두드렸지만 마을에 호적하기 위해 온 친척들이 많았기 때문에 ‘방’(kataluma, upper room)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자 가축들이 있는 곳에서 해산하고 거기 있던 구유(여물통)에 아기 예수를 눕혔다.
* 덧) '말구유'가 아니다! 말인지 소인지, 양인지 성경에 안 나왔다. 게다가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당시 말 타고 다닌 사람은 로마의 장군이나 귀족밖에 없었다. 예수탄생을 그린 종교화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가축은 양이 아니라 대개 '소와 나귀'이다.
양이 아닌 까닭은 당시 베들레헴엔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특별 관리하며 방목하던 양이 따로 있었기에 일반 가정에선 양을 기를 일이 없었다. 성탄기사에 나오는 목자들도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목자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소속 목자들로 추측할 수 있다. 일종의 성별된 목자이다. 그렇다고 해서 베들레헴 목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도 아니다. 소속만 예루살렘 성전 소속이지, 실제로는 똑같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혐오직업 종사자로 분류되었다. 그러니 밤에도 방목된 양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성경엔 동물 종류가 한 마디 나오지 않지만, '소'나 '나귀'라고 추측하는 건, 이사야 1:3 말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을 알지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 구절에서 소와 나귀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이후 교부들은 소는 유대인, 나귀는 이방인을 상징한다고 풀이했다. 그러니, 이 둘이 함께 등장하는 성탄 그림은 '예수의 탄생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아우르는 우주적인 사건'임을 나타낸다.
간혹 소가 아기 예수를 응시하는 대신, 엉뚱한 곳을 쳐다보는 그림도 있다. 이 때 화가가 의도하는 건, 유대인들이 메시아 탄생을 무시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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