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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54 추천 수 0 2024.02.25 09: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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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43-4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43-4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사람들이 수군거린 것은 주님이 보통 사람이면서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늘 보던 이웃사람이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면 안 믿는다. 왜냐? 성령으로 잉태된 것도 아니고, 선지자의 예언대로 온 것도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이 된 대로 오셨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셨는데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이걸 안 믿기 때문에 수군거린 거다.

 

지금 내가 예수다라고 하거나 내가 재림주다라고 하거나, ‘예수는 인간구원의 사역을 실패했고 내가 구원자다라고 하는 이단자들이 많은데, 이런 자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하는 근거를 어디서 찾느냐? 만일 자기가 재림주라고 한다면 이는 부활한 존재여야 하니, 부활체는 보였다 안 보이기도 하고, 안 보였다가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인간이 죽일 수가 없다. 또한 독약을 먹여도 안 죽고, 칼로 쳐도 안 죽고, 총을 쏴도 안 죽는다. 이걸 확인해 봐라.

 

재림예수라고 하는 사람을 꼬집어 봐라. ‘아야하고 아파하면 부활하신 예수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는 게 일반사람과 같으면 재림예수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이단자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건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런 자들이 판을 칠 수 있다는 것은 교회의 교훈이 얼마나 허점이 많고 잘못되어 있는지를 말해주는 거다.

 

이런 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신비로운 안수나 방언 이런 걸 다 끊어라. 이런 것에 질질 끌려 다니면 자기도 어느 사이에 악령을 받아서 그 모양이 된다. 악령을 받으면 사람의 이성이 흐려져서 바른 판단을 못한다. 이건 일반용어로는 미친 거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이런 게 얼마나 많으냐?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이라고 했는데, 이끌림을 받는 자가 누구냐? 예수님이냐, 교인이냐? 교인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이끈다는 말이 교인을 눈에 안 보이게 가자. 가자라고 해서 이끈다는 거냐?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는 게 무슨 뜻이냐? 이 말은 하나님께서 존재나 사건이나 환경이나 각 사람의 형편을 들어서 주권적으로 인도를 해야 만이 예수님께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여러분들이 우리교회에 나온 것은 나오기까지의 자기의 출생, 그리고 자라남, 이사를 다니고, 직장에 다니고, 다른 교회에 다니고 한 전부의 과정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님 앞에까지 나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된 거다. 인간 편에서 보면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궁극교회에까지 온 거다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끄셔서 이 자리까지 온 거다.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섭리라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것을 모두 이용 활용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신앙을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보통은 연속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고, 찾고 싶은 마음이 강해질 때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보시고 예수 믿는 사람을 붙여서 하나님께 나오게 하는 섭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믿는 사람이 교회에 안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나가지 말라는 시험이 있게 된다. ‘그래? 그러면 나가지 말아라하는 시험이 있다. 이러면 자기는 내가 일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가련다라고 하면서 위안제를 마시게 된다.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 자기의 신앙은 자꾸 퇴보다. 반대로 어찌하던 주일에는 꼭 교회에 나가고자 한다면 그 마음에 따라 나가기 힘든 일이 생겨도 나가게 된다. 여기에는 신앙의 실력이 붙는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렇게 되는 거다.

 

우리의 신앙에 부정적으로 역사를 하는 곳에는 대부분 하나님께서 마귀를 통해 역사를 하신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안 나가고자 하면 마귀가 와서 나와 저기로 놀러 가자라고 한다. 믿는 사람이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서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대신 놀러갔다 오면 마음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으냐,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게 있느냐? 후자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대신 놀러갔다 왔을 때 자기의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찜찜하고 기분이 안 좋은 게 참 사람이냐, 기분이 좋은 게 참 사람이냐? 기분이 안 좋은 게 참 사람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양심을 붙잡고 역사하시는 거다. 이 양심을 계속 짓밟으면 이 사람은 화인 맞은 양심이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게 참 많은데 대부분 속고 변명이 많다. 계속 이렇게 나가면 나중에는 냉해지고, 주저앉고, 믿음에서 떨어진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말한다. 우리 개개인에게 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예수께로 나온 거다. 그런데 중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석가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냐? 석가는 천지만물을 만들고 만물을 보존하고 섭리하는 존재가 아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만물을 보존하고 섭리하신다.

 

자기의 인생을 어떤 개인에게 맡긴다는 식으로 그 분이 나를 잘 인도하고 잘 봐주겠지하며 전폭적인 신뢰를 하게 되면 성경식으로 말을 하면 이 사람은 자기가 신뢰하는 사람의 섭리를 따라 사는 건데, 이러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어느 정도 덕을 보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결국에는 자기가 신뢰한 사람에게 이용을 당하고 차이게 된다.

 

그러면 주님에게 자기를 맡기는 것도 사람에게 자기를 맡기는 것과 같은 거냐? 예수님께 자기를 맡기면 주님처럼 만들어지는 게 있다. 자기를 주님께 맡길수록, 따를수록 자기는 사는 거고, 사는 족족 영원히 존귀 영광이요 행복이다. 이게 우리가 믿는 기독교요, 예수 믿는 신앙이다. 예수 믿으면서 안의 것을 속속들이 맞을 못 보면 그냥 예배당만 밟게 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이끄신다고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사건과 환경이 들어 있다.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을 겪게 해서 예수님께로 오게 하신다. 이런 과정이 없이 주님께로 이끌면 고마운 줄을 모르고, 감사한 줄을 모르고, 자기가 잘나서 주님을 믿는 것으로 아는 교만한 마음, 망할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면으로 보면 예수 믿는 사람 전부는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께로 불러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교회이기 때문에 이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의 역사가 계신 건데 예수님께서 왜 유대인들이 듣는 데서 아버지께서 예수님께로 보내신다라고 표현을 하셨을까? 이 말 속에는 유대인들에게 가는 교인이 따로 있고, 예수님께로 오는 교인이 따로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듣는 유대인들에게, 또한 이 말씀을 보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를 누구에게 보내야 예수님처럼 만들어질 수 있겠느냐?’ 하고 묻는 거다.

 

아버지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소원, 목적, 계획성, 비밀스런 것을 누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느냐? 1: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과 모든 만사가 돌아가는 섭리성과 인간구원에 관한 것 전부가 들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표현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해 네가 내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인간들에게 100% 다 가르쳐라이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신앙의 본질을 염두에 둔 말이니, 이 말을 받는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은 아무 교회에나 다 계신 거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교회에서 크게 역사를 이루시는지를 알아서 그런 교회로 나가야 한다.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아무 교회나 나가야지라고 하는 것은 큰일 날 소리다. 기독교의 질을 모르면 제 마음대로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교인들을 예수님께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가르치라는 거다. 그래서 아무 교회나 나가는 게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님께 오는 자가 하나님께서 보낸 자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끌림을 받은 자다. 불타고 심판 받을 세상 것을 구하는 교인은 마귀가 보낸 거다. 마귀가 보낸 교인은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는 쪽으로 간다. 주님이 보내신 교인과, 마귀가 보낸 교인은 그 사람 속에 든 정신을 보고 아는 거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하셨다. 몸에 병이 들었어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한다. 가난해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한다. 전쟁이 나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한다. 성도가 이런 사람으로 되게 하려고 이런 저런 사건 환경 가운데 집어넣는 거다. 그런데 진리신앙이 아닌 자들은 이걸 모른다. 세상에는 항상 크고 작은 이런 저런 일이 터지는데, 예수님께서 이런 가운데 사는 성도들에게 터진 일 자체를 막으려고 하지 말고 그럴수록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이게 없이 늘 땜질 방식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당신의 일에 크게 쓰셨다고 하면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정신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쓰셨는가?’ 하는 것을 봐라. 그 사람이 이적 기사를 행한 것이나 어떤 큰 일을 한 것을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그 역사를 일으키실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의 신앙정신을 봐라. 옳은 교회는 말씀의 이치다. 맑은 정신으로 이치를 깨닫게 한다. 악령의 교회는 사람을 이성적으로 혼돈 시켜서 감정으로 끌고 가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현혹시킨다.

 

집에서 테레비를 본다면 테레비를 보는 동안은 자기의 시간과 마음이 어디론가 빼앗기는 거다. 이건 그만큼 자기의 인생이 줄어져가는 거다. 우리는 뉴스를 보던, 스포츠를 보던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달아야 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하는 여기에는 인간창조의 근본목적이 들어 있고,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지배하는 구원이 들어 있으니 믿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기의 현실에서 매사에 자타의 구원을 위해 산다면 이 사람이 진짜 애국자다.

 

세상에 속한 유대 종교인들과, 로마의 빌라도와, 헤롯을 등에 업고 그 힘을 배경으로 삼는 자들은 예수님께 고난을 주고 죽였다. 지금은 표면적으로는 이런 일이 없더라도 교회들이 마귀적 세상적으로 흐른다면 이것은 의사적으로 주님과 대립이요, 주님을 죽이는 거다. 주님 당시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길, 넓은 길로 나가는 교회는 심판으로 가는 거다.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는데, 이 부자청년이 정말로 영생을 얻고 싶어서 이 말로 물은 걸까? 예수님께서 바른 것을 가르쳐 주면 그대로 실천을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근심을 하고 돌아갈 것이면 뭐 하러 물었느냐? 이 청년의 행동을 보면 우리가 짐작컨대 재산을 그대로 가진 채로 먹고 누리면서 영생을 얻으려고 한 것 같다. 그러니 한 쪽 눈을 찍고 뽑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는 것은 세상 마지막 날에 성도들을 변화 부활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 하나는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제일 낮은 자리에 처해졌을 때 주님께서 이 사람을 다시 세우신다는 거다. 이건 현실에서 되어지는 거다.

 

세상 마지막 날 변화 부활이 될 때 빼어난 부활의 미모성을 가지려면 현실에서 구원을 찬란하게 이뤄가야 한다. 현실에서 이룰구원을 잘 이루는 것은 장차의 변화 부활성을 찬란하게 이루는 것이니 이 사람은 마지막 날이 언제 오더라도 하나님께서 욥을 봐라. 노아를 봐라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세우셨듯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다시 살리신다.

 

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선지자는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미래에 되어질 일을 미리 알게 한다.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어떤 사람들이? 아버지께 배운 사람들이다. 이들이 다 예수께로 온다는 거다. 여기서 아버지,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를 말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바로 가르치는 양육자들, 즉 선지자나 믿음의 조상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본질로 적중적으로 듣고 배운 자들은 예수님께로 오게 되어 있다.

 

주님께 온다는 것은 주님과 대립성이 없이 의사단일이라는 거다. 이러면 구원을 알게 되고, 주님으로 성품화 되고, 주님의 인격과 연합이 된다. 예수 믿는 것은 이런 게 있는 건데 교회 인도자들이 교인들을 가르칠 적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께로 밀착시켜 주는 건지, 아니면 세상을 구하게 해서 세상 쪽으로 더 밀착이 되게 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의 인기몰이를 위한 쪽으로 가르치는 건지?

 

주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라고 했다. 그러면 어떤 게 주님의 음성이냐? 믿는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야 어느 교회에 가던 그 교회 인도자의 입에서 주님의 음성이 나오는 건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의 말에는 나를 누구 쪽으로 끌고 가는구나이게 있는 거다.

 

주님의 음성이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세상 쪽으로 끌고 가는 말은 주님의 음성이 아니다. 이 말을 들으면 신앙의 질이 양이 아닌 이리가 된다. 그래서 목사가 세상 것을 자꾸 말하면 교인들은 이리에게 노략질을 당하는 거다. 교인들의 노력과 충성봉사를 세상에 다 빼앗기는 거다. 거짓 종들은 삯꾼 목자가 되어서 교인들을 뜯어먹고 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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