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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시편 103:15~22
“할아버지, 이게 무슨 애벌레에요?”
아홉 살 손녀가 길가 울타리로 조성한 회양목에서 파란 벌레 한 마리를 발견하고 소리쳤습니다. 회양목명나방 애벌레였습니다. 이 녀석은 회양목에게 피해를 입히는 유해충입니다. 내버려 두면 나무를 고사시키기도 하여 방제를 해야 합니다. 아이는 애벌레를 한참 관찰하다가 주변에 하얀 실들이 얽혀있는 것을 보고 애벌레가 거미줄에 걸렸다고 생각하였는지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 애벌레 주변에 있는 하얀 실들을 걷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거미줄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애벌레가 제 입으로 토해 낸 것들입니다. 애벌레는 그 속에서 잎을 갉아 먹습니다. 손녀가 한 일은 애벌레를 위한다고 한 것인데 사실은 애벌레의 생존을 크게 위협한 일입니다.
회양목은 암수 딴그루로 이른 봄에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여러 개의 연두색 꽃을 피웁니다. 아직 꽃이 드문 계절이라 벌들에게 아주 유용한 먹이가 됩니다. 꽃이 크지 않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크게 자라지 않습니다. 성장 속도가 느려서 ‘자라는지 모르게 자란다’는 말이 따라다닙니다.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수형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200년 된 회양목이 있는데 키가 5미터도 되지 않습니다. 가뭄과 공해에 강하여 쥐똥나무와 함께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습니다. 잎은 두꺼운 타원형으로 늘푸른나무입니다. 가위질하여 가꾸면 반듯해 보입니다. 비록 더디게 자라고 크게 자라지도 않으나 나무질이 단단해서 옛부터 양반들의 낙관이나 호패로 쓰였고 목관악기나 현악기의 줄받이, 얼레빗의 재료가 됩니다. 어렸을 때 흔히 도장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봄날 나비의 누에고치가 막 탈피하는 우화(羽化)의 과정을 한 남자가 보았습니다. 고치의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과정이 너무 지루하였습니다. 나비는 등쪽 탈피선을 통하여 자신을 가두었던 육체의 껍질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완성을 향한 마지막 과정으로서 자기와의 투쟁이고 새로운 삶을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과거의 자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인내와 고통과 위험을 수반합니다. 고치 탈출에 성공하였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에 배인 과거 습기를 말려야 하고 말랑말랑한 몸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색소침착이 이루어져 본연의 색을 입습니다. 그리고 시맥 사이로 공기가 주입되어 날개를 부풀려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지루하지만 필수 과정입니다. 그래야 나비는 성체가 되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작은 실수를 하면 안 됩니다. 우화 과정에서 작은 외부의 자극이라도 받으면 날개에 상처가 생기거나 쪼그라들어 기형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나비가 우화 과정에서 죽습니다. 그 과정이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이루어지자 남자는 나비를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입김을 고치에 불어넣었습니다. 온기를 받아 나비는 수월하게 고치를 탈출하는가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고치를 빠져나온 나비는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스의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전하는 말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피고 지는 들꽃 같아, 바람 한 번 지나가면 곧 시들어, 그 있던 자리마저 알 수 없는 것이다.”(103:15~16)
주님, 인생이란 자기를 극복하는 일입니다. 투쟁이고 전쟁입니다. 이 지난한 과정없이 완성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자기를 극복하고 자연화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입니다. 버텨낼 힘을 주십시오.
2024년 4월 28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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