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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기
사도행전 7:37~53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의 희망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골목마다 가득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학교가 문을 닫고 지역이 사라지는 지금 당신의 희망을, 미래의 행복을 놓치지 마세요. 행복한 출산, 화목한 가정은 삶의 가치를 바꾸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기독교 대학 총장의 TVCF 광고 내용입니다. ‘건강한 가정 문화’ 캠페인인지 대학 홍보인지 아리송하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다 긍정과 공감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평소 어떻게 살았는지 삶의 궤적이 말의 진정성을 입증합니다. 스데반의 설교 내용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전통과 역사에 터하였습니다. 새로운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성경 읽기가 당시 유대 종교인과 달랐던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를 아는데 머물지 않고 그것을 해석하여 자신에게 비추어 보며 반성하고 아파하고 적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스데반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꼬집으며 자기성찰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성경 읽기란 그래야 합니다. 성경 읽기는 지식을 위함이 아니라 삶을 위함입니다. 반성과 개선에 이르지 않는 성경 읽기는 백날을 하여도 무익합니다. 그런데 이런 스데반에 대하여 유대 종교인들은 성전과 율법을 모독하였다면 분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다.”(7:53)
옳음을 긍정하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문제입니다. 진리를 수용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고, 그 가치를 따르는 스데반을 향하여 복수심에 불탔습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처럼 두루뭉술 대강 처신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곧은 소리가 종교 권력자들의 비위를 거스릅니다. 500여 년 전 교회의 제 길을 찾기 위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속화의 길을 걷는 교회를 비판하면 발끈합니다. 스데반에게 이를 갈던 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라기보다는 권력화된 종교 울타리에 안주하는 이들입니다. 교회의 겉모습은 갖추었으나 속은 자기 우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같은 편이 아닙니다. 같은 가치와 동일한 정신, 그리고 지향이 같아야 동지이고 벗입니다. 순수함을 잃고 있는 오늘의 교회가 안타깝습니다.
2024. 5. 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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