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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사도행전 10:34~48
세상에는 배워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배워도 하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 하나가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흉내내는 설교는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거나 남들을 따라 하면 대충은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질서에 따라 설교 면허를 따는 일은 가능할지 몰라도 설교는 배워서 하는 게 아닙니다. 설교는 복음이 지향하는 목표이자 신학의 결집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진수를 담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접촉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복음에 헌신하지 않거나, 하나님 나라의 전사가 아니면 설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 못한 자가 설교하면 설교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어서 복음은 스스로 몸을 감춥니다.
베드로가 이탈리아의 백부장 고넬료의 청함을 받아 그의 집에 갔을 때 고넬료는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4). 베드로는 그 이방인들을 향하여 설교하였습니다(34~43). 알려진 바에 의하면 베드로는 무학자에다 천직으로 취급 받는 어부 출신입니다. 그에게 변변한 설교를 기대하는 일은 난망입니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구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고넬료와 그 주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에 이르러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회 역사에는 아시시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프란치스코(1181~1226)나 맨발의 성자 썬다싱(1889~1929) 등 훌륭한 설교가들이 많이 등장하여 좌와 절망과 싸우는 인류를 위로하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게 하였습니다. 나에게 가장 위대한 설교자를 꼽으라고 하면 빈센트 반 고흐를 말합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어 교회에서 설교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목회 부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네덜란드교회가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교회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만일 고흐가 설교자가 되었다면 그 괴팍한 성격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설교를 듣느라 교우들은 희망 고문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흐에게 다른 방식으로 설교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림입니다. 그래서 고흐는 지금도 인류를 향하여 설교하기를 쉬지 않고 있습니다. 말과 문자에 매인 시간의 설교를 예술로 영원에 이르게 한 고흐의 설교가 기가 찹니다.
주님, 알버트 슈바이쳐는 고통받는 동물들에게 주님의 자비가 임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설교자에게, 그리고 설교를 듣는 청중에게 주님의 은혜를 넘치게 하여 주십시오.
2024. 5. 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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