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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생의 아침풍경
-누군가의 눈물 뒷자리-
매일 아침 일곱 시가 채 못 되기 전에 긴 장화와 벙거지 같은 모자 그리고 작업복 차림에 손수레를 끌고 교회 앞을 지나가는 형제가 있다.
인사를 건네도 고개 한 번 속시원히 하지 않고 환하게 웃어 주는 건 그들에겐 사치처럼 보인다.
창립주일을 맞아 좋은 연주회가 있으니 농사를 지으며 흘리는 땀을 음악으로 풀어 보는 건 어떻겠냐는건방진 제안을 했다. 형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는 창립 22 주년이기도 했고, 그 기운애 개대어 저녁 6시에 좋은 연주자 두분을 모셔 예배당에서 첼로와 바이올린 앙상블 연주를 가졌다. 기다리던 비였으나, 행사가 막 시작하기 전에 후두둑떨어지는 빗방울에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구겼다.
그래도 눈을 들어 돌아 보니나와는 달리 꽃과 나무는 싱긋 웃는다. 그래 그런 거지 내 욕심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지!
연주가 시작되었다. 예배당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한곡 한곡이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차고, 두 연주자는 매우 흡족해 하며 행복해 한다 .
그래 그래야지 연주가 일이라면 저리도 행복하지는 않을 거야. 콘서트에 오신 지인을 반갑개 맞았다.그런데 알고 보니 첼리스트의 작은아버지와 조카 사이 였으니…세상은 넓기도 하고 좁기도하고, 우연이기도 하고 필연이기도 하다. 내가 그붐에게서 첼로를 서너 달 배운 인연이 이렇게 연결되다니…
“두분이 잘하는 사이셨어요. 자주 찾아 연주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예배당이 연주 하기엔 너무 잘 이루어져 행복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나의 첼로 스승이 기도 하시죠.”
그래 그런 거야.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도 문을 열 수 없는 거지. 그러고 보니 바이올리니스트 선생님의 가족도 대단한 음악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수십 년간학교에서 훌륭한 연주자를 키워 내던 스승이셨고, 큰딸은 비엔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까지 어머니의 눈물과 땀보다 아름다운 음악이 있을까?
난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공부에서 남주냐? 잘 먹고 잘 살려면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한 기억이 없다. 공부를 잘 하라는 이유는 남주기 위해서, 다 남에게 행복을 전하기 위해서, 배고픈 이들의 밥을 채우기 위해서 그래랴 한다고 가르쳤다.
이번 연주회의 징검다리가 되어 준 한 분이 계신다. 우리나라 1세대 의상디자이너로 유명 세를 떨치셨지만, 지금은 80 후반의 연세, 게다가 지난 주간엔 매우 몸이 좋지 않았으셨다. 그래도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조카의 연주를 들으러 예배당을 찾으셨다. 그도 딸을있어 유명한 디자이너로 만들었지만,그는 병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 순리에 적응하고 먼저 갔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세상은 누군가의 촉발과 도움과 누군가의 한숨과 눈물로 인해서 문이 열리고 감동이 열리고 행복이 열린다. 오늘 아침이 참 밝다. 긴 장화를 신은 두 형제가 손수레를 끌고 오늘 아침도 교회 앞을 지나간다. 그 형제가 어제 콘서트에 참석 했다면 난 그들의 농사가 예술이고 문학이고 연극 이었다는 걸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형제는 오늘도 밭으로만 간다. 그래서 아쉽다.그래도 난 소망한다. 다음 연주에는 그 형제가 함계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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