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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환대
사도행전 13:32~52
선하고 의로운 말을 경우에 맞게 하였을 때 청중의 반응이 좋으면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상대가 논리정연하고 조리 있게 말해주면 친구를 만난 듯 반갑습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어도 좋고, 혹 자신과 다른 생각이지만 간과하였던 부분을 보완해 주어서 자기 성찰에 이르게 하면 스승을 만난 듯 감사합니다. 목사가 설교한 다음에 ‘은혜 받았습니다’고 응대하는 교인을 대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해석의 여지가 있고 상투적이고 치렛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성경 해석을 쉽고 의미 있게 해주셨습니다.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으니 고맙습니다’ 정도로 받아들여도 여간 감사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러한 말씀을 해 달라고 청하였다.”(13:4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 회당을 찾아 설교한 바울로서는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 중에 바울에게 호감을 갖고 따르는 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누구로부터도 들어 보지 못한 생명의 복음을 들었고 소문은 주변 시민에게 퍼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안식일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어떤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 중에는 바울의 설교를 귀담아 들으며 호의적인 이들도 있었으나 모든 유대인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하였다.”(13:45)
세상 이치가 그렇습니다. 절반의 지지와 절반의 반대 사이에서 인생은 가늠됩니다. 환대와 응원을 자랑만 할 것도 아니지만 배척과 편견에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바울 일행은 더 담대하여졌습니다. 유대인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한 바울 일행은 ‘이방의 빛’ 역할을 하기 위하여 더욱 증진하였습니다. 미련을 털어버리고 다음 도시 이고니온을 향했습니다. 전도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주신 은총입니다.
주님, 환대와 칭찬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밑절미입니다. 교회마다 따뜻한 사랑의 말이 넘치게 하시고 그 말들이 힘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을 변화시킬 언어를 교회에 주십시오.
2024. 5. 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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