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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사도행전 27:21~44
“바로 지난밤에, 나의 주님이시요 내가 섬기는 분이신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27:23~24)
사명을 가진 자는 그것을 이룰 때까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배의 목적지는 바람의 방향이 정할 수 없습니다. 어지간한 바람이 불더라도 돛과 키가 그 역할을 하도록 기술을 가진 선원이 있다면 도리어 속도감을 느끼며 항해를 유쾌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풍랑이 너무 거세어서 돛과 키가 그 기능을 상실할 정도가 되면 큰일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안전한 항구에 빨리 피하여 바람과 물결이 잦아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거센 자연 앞에 인간의 능력은 너무 작고 초라합니다.
유라굴로 풍랑에 휩쓸리고 있는 바울과 그 일행이 탄 배의 형편은 인간의 연약함과 인간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배에는 먹을 것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풍랑에 쫓겨 구원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27:20). 그렇게 열나흘이나 고생하고 있을 때 배에 대하여서서 뿐만 아니라 유라굴로의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원들이 거룻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였습니다. 공생보다 독자생존이 우선하는 사회의 풍경입니다. 평소에는 지성과 도덕과 인품이 사람을 이타적으로 치장하더라도 인간의 한계성을 만나면 누구라도 이기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사회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지식이 공공의 이익에 이르지 못하고 기술은 홍익에 미치지 못합니다.
과학과 기술이 세상을 주도하는 시대에도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인생의 질문에 과학의 답변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을 통한 탐구는 자연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첨단 기술은 인류의 삶을 더 편리하게 합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삶을 의미 있게 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로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은 그 자체가 맹신입니다. 그래서 과학 미신과 종교 미신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주님, 혼자 살려고 하면 모두 죽습니다. 함께 살려고 하면 모두가 살 수 있는 진실을 배웁니다. 희망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전하는 사명을 열심히 수행하고 싶습니다. 힘 주시기를 빕니다.
2024. 6. 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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