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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남길까

가족글방 최주훈 목사............... 조회 수 19 추천 수 0 2024.06.30 08: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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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남길까>
2010년 논문 발표 차 독일 학회에 갔다가 오스트리아 루츠모스(Rootzmoos)와 파르츠(Parz)의 작은 박물관을 찾은 일이 있습니다. 이 지역은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개신교인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1517년 종교개혁 이후 16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지만, 17세기 들어 로마 가톨릭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전 유럽이 참전하는 참혹한 전쟁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벌어집니다.
온 유럽을 폐허로 만든 30년 전쟁(1618년 발발) 이후 독일지역은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지만, 접경국인 오스트리아는 달랐습니다. 당시 로마교회를 지지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면서 종교개혁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날로 심해졌고, 결국 10만 명의 개신교인이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대규모 이주를 하게 됩니다.
여러 이유로 그곳에 남은 개신교인도 있었는데, 이들은 약 170년간 정확히는 1630년부터 1800년까지 비밀리에 종교개혁 신앙을 지키며 살게 됩니다. 이들을 ‘숨겨진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비밀리에 예배하며 교리 공부 모임을 가졌고, 자녀들에게 소교리문답과 대교리문답을 은밀히 전수하며 신앙 교육을 했습니다. 개신교인은 장례식도 치를 수 없고, 사후라도 발각되면 파묘 당하고 묘비도 박살 나는 모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루츠모스 개신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고 합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여기 남은 후손들은 박해 가운데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니 단지 입에 발린 자랑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는 자긍심이라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 루터는 공교육의 중요성과 약자를 위한 복지제도를 강조했고, 개신교 진영은 이를 삶의 자리에서 구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170년 동안 신앙을 보호받지 못하던 그곳에서 숨겨진 프로테스탄트들은 개혁의 정신을 자녀들에게 전수했고, 지역 최초의 고아원, 유치원, 학교를 설립해 무상 공교육과 사회복지의 장을 열게 됩니다. 루츠모스에 세우진 이 작은 박물관은 이들의 신앙을 기리는 후손들의 역사 기억입니다.
170년간 세대에 걸쳐 박해받고도 신앙을 지킨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켜온 ‘신앙의 순수성’이 무엇인지 궁금해 박물관장에게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대화 내내 자신이 루츠모스의 종교개혁 후예라는 당당함이 느껴졌습니다. 그가 이렇게 답변하던 게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는 진실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집니다. 이것이 우리를 버티게 한 신앙의 순수성입니다.”
이들에게 박해는 오히려 거룩한 교회의 터전이 되었다는 용기 있고 당당한 신앙의 고백이 인상 깊었습니다. 비록 힘없는 현실, 박해와 고난으로 생계뿐 아니라 목숨도 위태로운 현실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신앙, 아니 그러지 못하고 죽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신앙,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두세 명만 있어도 위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신앙이 이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신앙은 후손에게 물려줄 자랑스럽고 가치있는 유산이 됩니다.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눈과 귀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실한 신앙고백’, 요즘처럼 교회가 욕먹는 시기에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교단과 신학대학마다 추문이 끊이지 않고, 몇몇 교단에선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낯 두껍게 행동하는 지도자들도 보입니다. 진실한 신앙고백은 고사하고, 어린아이도 있는 최소한의 양심은 어디 가버린 것일까요? 오늘 우리의 교회는 대체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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