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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새로 읽기
예레미야 29:15~32
유다는 힘이 없어서 바빌로니아에 멸망하였습니다. 다윗 시대였다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정복되어 무참하게 무너졌고 성전도 훼파되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적의 수도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포로를 면한 이유가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인 양 대견해하였는지 모르지만, 유대인의 역사와 전통과 믿음은 신흥 강국 바빌로니아의 힘 앞에서 여지없이 부정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시각은 다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빌로니아로 쫓아 보낸 너희 포로들아”(29:20)를 통하여 유다의 멸망과 백성의 포로로 끌려간 일이 하나님의 의지였다고 밝힙니다. 이는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숭배한 때문입니다(22:5, 9, 29:19). 유다는 힘이 모자라서 망하거나 굴욕을 당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징계와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에 담긴 의미와 흐름을 짚어 내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현대를 건지려면 군축회의도 필요하고 경제회의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새로운 세계이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머리가 달라져야 한다. 달라져도 웬만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역사를 고쳐 읽자는 것이다.”(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35쪽) 근본이 달라지지 않으면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본문은 포로지인 바빌로니아에서도 예언 활동이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빌로니아에서 예언 활동을 하는 스마야는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있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왜 책망하지 않느냐?’고 힐문합니다(26~27). 본문을 읽으면서 ‘모든 예언자는 언제나 옳은가?’, ‘같은 현상 앞에서 각기 다른 메시지를 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나는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인가?’, ‘이런 경우에 백성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왜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를 허용하시는가?’의 질문을 마주합니다. 스스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부화뇌동합니다.
주님,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거짓을 진실처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있어 세상이 어지러운 게 아닙니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습니다.
2024. 7. 7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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