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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 그 너머
예레미야 31:10~22
신상필벌은 보편과 상식의 가치입니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칭찬을 듣고 악행을 저지른 이에게는 벌이 가해지는 세상이라야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래야 삶의 의지가 건강해지고 사회 곳곳에 미담이 싹틉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야 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게 자연의 원리이듯 사람 사는 이치도 그렇습니다. 땀흘리며 부지런히 일한 자에게 정당한 소득이 주어지는 세상이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 착한 일이 칭송받아야 합니다. 이런 삶의 원리를 한 마디로 ‘인과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런 기대를 하는 일은 난망입니다. 인과율에 의한 보편적 가치와 삶의 상식적 원리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보편적 가치나 원리보다 자기 욕망과 이권을 우선합니다. 약삭빠른 이들이 주가조작, 부동산 투기 등으로 돈을 벌고, 힘을 숭배하는 이들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을 독점합니다. 그런 이들이 펼쳐가는 세상이 정상일 리 없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세상은 밀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과율의 질서를 초월하는 일도 있습니다. 인과율대로라면 인간은 죽어 마땅합니다.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초월하는 또다른 법칙이 있습니다. 긍휼과 사랑의 법입니다. 성경은 이를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거스리며 온갖 악행을 일삼은 유다를 바빌로니아에 맡겨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께서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지키듯이 그들을 지켜 주신다.”(31:10)
우리가 인생을 긍정하고 끝까지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패망한 지 100년도 훨씬 지난 북왕국 이스라엘을 소환하여 회복을 예언합니다.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증오와 대결을 일삼는 한반도의 교회가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에브라임이 탄식하는 소리를 내가 분명히 들었다. 주님, 우리는 길들지 않은 짐승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가르쳐 주셨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이제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께 돌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31:18)
주님, 상식 너머에 은혜가 있습니다. 율법 너머에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과 은혜를 누리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초월을 살아낼 능력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4. 7. 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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