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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예레미야 33:1~13
예술에서 ‘클래식(Classicus)’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성을 갖는 최고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이 말이 명사로 사용할 때는 ‘명작’, ‘걸작’으로 인식되고, 형용사로 사용될 때는 ‘최고 수준의’,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의 뜻으로 이해합니다. 시대가 변하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영속성의 작품으로서 과거의 것이지만 지나버린 것이 아닙니다. 높은 작품성을 유지하므로 과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후세에 모범이 될 뿐만 아니라 전통을 수립하고 지속시키는데 기여합니다. 미술에서 클래식은 기원전 5~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형성된 미술을 말합니다. 그 후 2천여 년이 지난 후 르네상스에서 다시 솟구쳤고, 17~18세기 신고전주의를 통하여 클래식의 경향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났습니다. 오늘날 모더니즘의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모호성이 강조되는 세상이지만 클래식은 모든 문화와 예술의 고향이자 인류 문화를 잉태한 모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가 토성을 쌓고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다를 멸망시킬 때 유다의 죄악 때문에 외면하셨습니다(5).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성을 치료하여 낫게 하겠고, 주민을 고쳐주어 평화와 안전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보아라, 내가 이 도성을 치료하여 낫게 하겠고, 그 주민을 고쳐 주고, 그들이 평화와 참된 안전을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겠다.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옛날과 같이 다시 회복시켜 놓겠다.”(33:6~7)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처음처럼’ 되는 일입니다. 타락 이전의 상태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는 일이 바로 구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처음 지어졌을 때 얼마나 존귀한 존재였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잊으면 구원의 여망도 사라집니다. 처음 사람은 서로에게 존귀한 존재임을 고백했습니다(창 2:23). 경쟁과 극복의 상대가 아니라 사랑과 헌신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처음의 이상을 훼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인류 공동체를 “다시 옛날과 같이 회복시켜 놓겠다”(11b)고 하십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창조하신 처음의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인지를 기억하고, 주님께서 펼치실 새하늘과 새 땅을 기대합니다.
2024. 7. 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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