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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지도자
예레미야 36:20~32
같은 현상에도 서로 다른 반응 하는 이유는 가치와 지향과 이해와 득실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항일 독립운동은 민족의 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신일가의 영달을 위해 일제에 부역하는 이들에게 독립운동은 눈엣가시였습니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를 붙잡아 고문하고 살해하는 등 자기 성공의 기회로 삼는 노덕술 같은 못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보편적이고 상식에 터한 일에 찬반이 갈리는 이유는 악이 개입하고 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만국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질서가 개편되는 격동기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맞물려 있는 시점입니다. 두루마리를 기록한 이유는 백성이 악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백성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겼습니다(3). 예레미야는 이 두루마리를 바룩으로 하여금 성전에서 낭독하게 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은 깜짝 놀라면서 왕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16). 그런데 여호야김 왕이 보인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당연히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하여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난로 불에 태웠습니다(23). 신하들의 만류와 간청에도 불구하고 완고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숨어있는 예레미야와 바룩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26). 17년 전 그의 아버지 요시야는 서기관 사반이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줄 때 옷을 찢으며(왕하 22:10~11) 개혁을 실천한 데 비하여 여호야김은 아버지와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공세가 급박한 상황에서도 믿는 구석, 즉 이집트를 의지함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 듯합니다.
못나고 악한 지도자는 객관적 지혜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우상과 미신 등 주관적 믿음과 편향적 지식에 휘둘리다 보니 외골수이기 십상입니다. 신하들의 충언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 간신만 남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유다 왕 여호야김이 불에 태운 두루마리에 기록한 말씀을 모두 기록하였는데, 이번에는 그와 비슷한 말씀이 더 많이 추가되었다.”
주님, 우리 시대 지도자들이 보편과 상식에 기초한 지식과 가치를 소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2024. 7. 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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