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자구책
예레미야 37:1~10
시드기야는 요시야 왕(재위 주전 639~609)의 아들이지만 요시야가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에 의하여 죽은 후 곧 왕이 된 게 아닙니다. 요시야가 무깃도 전투에서 사망한 후 왕위에 오른 사람은 23살 된 아들 여호아하스입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이집트의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이집트로 끌어가고 스물다섯 살인 이복형 여호야김(재위 주전 609~598)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때 이집트는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여 유다는 그 요구를 들어주느라 등골이 휘었습니다(왕하 23:35). 그러는 사이에 국제 질서가 바빌로니아로 바뀌자 여호야김은 충성의 대상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국고를 털어 바빌로니아에 공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성전 기물들이 찬탈당했고 왕실과 귀족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도 이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국제 질서는 다시 바뀌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이집트 침공이 좌절되면서 유다에 대한 바빌로니아의 지배권이 약화되자 여호야김은 다시 이집트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주전 598년에 바빌로니아가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야김이 죽고(대하 36:6에서는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혀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바빌로니아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고니야)을 왕위에 앉혔으나 3개월만에 폐위하고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아마도 여호야긴이 부왕의 복수를 획책하려고 반 바빌로니아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시드기야(재위 주전 598~587)를 왕으로 삼았으니 그가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 역시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바빌로니아에 의해 두 아들의 죽음을 보고 두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가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요시야 이후 시드기야에 이르는 유다의 왕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읽었어야 했습니다. 바빌로니아가 유다 지도자의 죄악과 백성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도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왕들은 정치와 외교적 수완으로 자구책을 찾느라 하나님의 의도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즈음에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감상적 민족주의와 기술적 정치공학을 초월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이 유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 열강의 눈치를 보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 행위, 그 너머에 계신 주님의 뜻이 저희에게 희망이 되기를 빌 뿐입니다.
2024. 7. 24 수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