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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항복
예레미야 38:14~28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바빌로니아 ‘무조건 항복하라’고 권합니다(17~18). 그 길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항복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비굴하게 항복하여 목숨을 부지하기보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차라리 당당합니다. 그러나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 16:6)는 말씀처럼 수치와 모욕을 무릅쓰고라도 생존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시드기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바빌로니아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여야 한다. 그러면 너는 너의 목숨을 구하고, 이 도성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와 너의 집안이 모두 살아남게 될 것이다.”(38:17)
예언자는 반민족적 언사를 동원하여 ‘무조건 항복해야 한다’고 왕을 설득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에 항복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동치합니다(20). 왜 그럴까요? ‘바빌로니아에 항복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징계를 수용하고 스스로 성찰의 기회로 삼으며 주님의 은혜를 기대하라’는 다른 표현입니다. 지금 유다는 감상적 민족주의에 편승할 때가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을 거역한 지도자의 불순종과 백성의 죄를 뉘우칠 때입니다. 그 첫 단계가 바빌로니아를 도구로 삼아 유다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항복에 담긴 의미입니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초지일관의 예언자입니다. 그런 예언자를 싫어하는 기득권의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 의하여 예언자는 위협을 받고 공포를 느끼며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가 하면 에티오피아의 환관 에벳멜렉처럼 진실을 알아주고 하나님의 의로움에 참여하는 이도 있다는 사실이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 권한을 가진 시드기야 왕은 여전히 우유부단하여 갈팡질팡합니다. 흐릿한 판단력은 지도자의 부적격 사유 가운데 가장 큽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유다의 유력한 고관들을 두려워합니다
(24~26).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백성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리 유지에만 급급한 지도자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정직하지도 않고 철학도 없고 능력도 모자라는 지도자가 있는 세상에서 시민의 희망은 언제나 가물거리기 마련입니다. 희망을 주지 않는 지도력은 있으나 마나 합니다.
주님, 세상은 여전히 유능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말귀를 알아듣게 하옵소서.
2024. 7. 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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