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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예레미야 49:7~22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감은 다릅니다. 가까이에 있다고 가까운 사이가 아닐 수 있으며, 멀리 있다고 먼 사이도 아닙니다. 도리어 원수는 가까이에 있을 수 있고 좋은 친구는 먼데 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에돔은 가까운 사이입니다. 한 부모의 쌍둥이 민족이니 서로 의지하며 어려울 때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장자 명분을 확보하는 문제로 야기된 야곱과 에서의 갈등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대로(창 25:21~34, 27장) 심각했고. 부모의 편애가 이들 형제 사이를 악화시켰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리고 마음에 큰 고통을 겪은 후 야곱과 에서 형제는 극적으로 화해하였습니다(창 33장). 400명의 장정을 이끌고 나올 정도로 에서의 분노가 크고 갈등의 골은 깊었지만 의외로 화해는 간단하고 극적이었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생전에 더 이상 불화하였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넌 후 이루어진 형제의 화해가 즉흥적이 아니라 영원하다는 약속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앙금을 씻어내고 더 이상 다투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보편적 인류애에 터하여 서로를 존중하며 어려울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돕는다.” 야곱과 에서는 후손에게도 강력히 요구하였어야 합니다. “너희는 이스라엘(에돔)과 형제 민족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싸우지 말아라.” 야곱은 야곱대로, 에서도 에서대로 후손에게 유언을 남겼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야곱과 에서는 그러지 못했고 그 후손도 이 문제를 간과하였습니다. 그렇게해서 가까워야 할 형제가 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에돔의 관계를 보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걱정합니다. 지난 80여 년간 우리는 ‘증오 정치’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대결하고 적대시하고 악마화하는 일이 일상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자기 권력을 돈독히 하는 이들이 주구장창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들리는 평화를 지향하는 작은 목소리는 증오 세력의 악다구니에 묻히고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 일 수입니다.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에돔이 쓰러지는 소리가 땅을 흔들고,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홍해에까지 들릴 것이다.”(49:21)
주님, 에돔을 향한 주님의 심판 메시지가 한반도에 적용되지 않기를 빌고 빕니다. 증오를 넘어 평화에 이르는 용기를 이 땅 교회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4. 8. 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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