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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34 추천 수 0 2024.08.18 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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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7:17-18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717-18: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말은 사람의 말인데 그 말의 내용이 아버지의 뜻인 구원이 들어있는 말이 있고, 이건 하나님 아버지의 말이다. 그런가 하면 성경구절을 들어서 말을 해도 물질세상에 대한 소원 목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역목적으로 말을 한다면 이것은 자기의 말이요, 자기의 말은 인간의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파서 말씀을 듣고 깨달으려고 하는 게 정상이고 바른 생각이다. 그런데 세상 땅의 소원 목적으로 사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모든 만물이 인간 자기가 명령을 해서 생긴 거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긴 거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긴 거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고, 인간의 구원에 쓰임이 되라고 만드신 거다. 그래서 모든 만물을 통해 우리의 구원도리와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거다. 또한 모든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통해서도 구원도리와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내 몸 밖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나의 구원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건데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고 신앙실력을 쌓은 사람은 이런 움직임을 이용 활용해서 영적인 면에 많은 수입을 본다. 먹고 마시는 것은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도 다 하는 거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깨닫고 참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면에 이해타산을 두고 먹고 마시면 이 사람은 타락이 되지 않는다.

 

솔로몬이 아무리 지혜의 왕이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살았다면 어떻게 산 것과 죽은 것을 판단하겠느냐? 생명과 사망의 판단을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을 볼 때 일반적 심리로 보면 안 된다. 영의 눈을 가지고 영적인 면을 봐야 하는데, 영적인 면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심리와는 전혀 다른 거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령한 생명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인데, 땅에 속한 사람 중에 영생의 말씀을 한 자가 있느냐? 인간의 생각은 일 미터를 올라가도 물질세상이요, 천 미터를 올라가도 물질세상이요, 끝없이 올라가도 물질세상이다. 그래서 1학년짜리가 세상에서 뭔가 되어보겠다는 거나, 어른이 뭔가 되어보겠다고 하는 거나, 느부갓네살의 꿈에 보여준 것처럼 아무리 올라가도 그 소원 목적은 세상의 질이다. 거지의 속에 든 거나, 왕의 속에 든 거나 똑같이 세상이다. 그 생각이 물질세계를 탈피하지 못한다. 세상 안에 든 것을 비교해 보면 여러 층이 있지만 질적으로는 하늘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거다.

 

사람에게는 땅의 생각과 하늘의 생각,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 즉 사망적인 생각과 생명적인 생각이 있다. 그런데 땅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높고 좋은 생각을 한다고 해도 사망적인 생각밖에 못한다. 인간의 생각은 아무리 올라가도 세상 생각, 땅의 생각이요, 땅의 생각은 임시적인 생각, 현상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다. 세상사람들은 전부가 땅에서 났으니 모든 생각이 땅의 생각이다. 세상의 것은 보였다가 안 보이고, 잡혔다가 도망가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으니 하늘의 생각이요, 교훈도 하늘의 열매가 열리는 교훈이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 이 열매는 영원한 효력을 준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령의 감동 감화를 입혀서 인간의 손을 빌려서 쓴 거다. 그래서 성경은 땅에 속한 인간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면 하늘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하고, 생각이 바뀐 사람은 지식이 하늘의 지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땅에 속한 거다. 예수 믿고 옳은 지식이 들어가면 생각이 바르게 나온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의 부귀공명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성경구절을 붙여서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성경의 뜻은 물질에 속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거다.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으로, 하나님의 도덕성으로, 하나님의 능력성으로 온전케 되는 거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물질을, 모든 존재를, 모든 생활을, 모든 환경을 들어서 인간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드는 역사를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생활을 하면서 겪고 헤치고 나가는 것에는 영능으로 실력화 되는 게 들어있다. 이건 돈으로 환산이 안 된다.

 

신앙은 물질로 따질 수도 없고, 물질로 따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을 물질로 따져서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좋다고 할 때는 물질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인격을 보고 하는 말이다. 예수 믿는 자기가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으로, 하나님의 도덕성으로, 하나님의 능력성으로 잘 만들어지는 게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현재 자기가 어디서 믿고 있건 자기의 신앙정신을 구별 분별하지 못한다면 예수를 헛믿는 거다.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 거다. 설교를 들을 때 목사님의 말씀의 출처가 땅인지 하늘인지 구별을 하라. 누가 말을 해도 구별 분별을 하라. 안 하면 안 된다. 자기의 존귀 영광과 멸망과 생명이 들어있으니 구별 분별을 해야 한다. 구별 분별을 안 하는 것은 죄다. 성령님은 영적인 면에서 구별 분별을 시키는데 자기는 안 하고 있다면 죄다. 예수 믿으면서 옛사람으로 믿어왔는지, 새사람으로 믿어왔는지, 어디에 소원 목적을 두고 이해타산을 따져왔는지 구별 분별을 해야 한다.

 

어느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자기가 본 절의 말씀대로 구별 분별을 할 수 있느냐? 목사가 말을 할 때 구원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면 이는 우리의 이룰구원 면으로 보면 미친 소리가 되는 거다. 이런 말을 들으면 참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거짓의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자기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말뜻을 빨리 알아차린다고 하면서 자기가 말을 할 때 정립을 해서 육에 속한 건지, 영에 속한 건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말을 한다면 이 사람도 미친 거다.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자기의 영광과 보내신 이의 영광이 나오는데, 말에는 선한 말이 있고 악한 말이 있다. 즉 의적인 말이 있고 불의적인 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것을 섞어놓으면 이건 문학적으로 철자로는 맞는 것 같을지라도 신앙 사상적으로는 전혀 안 맞는 말이 된다. 악한 말이다. 그냥 말만 들으면 별로 하자가 없을지라도 앞의 사상과 뒤의 사상을 보면 신앙과는 전혀 안 맞는 말이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만들었다라고 하면 말은 맞는데 하나님의 것이니 그걸 나에게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이건 안 맞는다.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라고 하면 이건 영이고, ‘나에게 주십시오라고 하면 이건 육이다. 질이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왜 만물을 만드신 거냐? 인간 자기에게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달라고 하게 되면 앞의 만물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라고 한 말도 분석을 하면 육이다. 뒤의 육적인 말을 하려고 앞의 말로 하나님을 띄운 거다. 우리는 이런 걸 구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세 분이 다 신앙이 좋은 거냐, 아니면 세 분 중에 신앙이 더 좋은 사람이 있는 거냐, 아니면 세 분의 신앙이 다 나쁜 거냐? 누가 신앙이 제일 좋은 것 같으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으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첫째고, 그 다음이 이삭이고, 그 다음이 야곱이냐? 아브라함의 신앙이 제일 좋다고 한다면 이해는 간다. 왜냐? 떠날 때부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다 떠났으니까. 즉 물질선, 인정선, 자연생명선을 다 떠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침 일찍 떠났다. 옳은 판단을 했으면 빨리 실행을 해야지 어정쩡하면 살아가면서 시원한 꼴을 못 본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참 좋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떠날 때 그의 신앙정신이 그 때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계속해서 나갈 때는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그리워하면서 간 건지, 아니면 가면서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정신으로 오늘도 떠나고 내일도 떠나고 하면서 계속 가는 건지? 하루만 떠났다가 그 다음 날 얼른 고향에 들어갔다 나오는 게 아니라 날마다 떠난 거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라고 했는데,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건데 어떻게 날마다 죽느냐? 이 말이 죽을 게 많다는 뜻이냐? 오늘날 우리는 사도바울과 비교하면 죽일 게 많으냐, 살릴 게 많으냐? 말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죽일 것이 많은 건지 살릴 것이 많은 건지, 뭐가 산 건지 뭐가 죽은 건지, 뭐가 옛사람인지 뭐가 새사람인지 도무지 모른다. 이러면 교회에 나와서 교인들과 좋게 지내는 것으로 끝난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판단을 가지는 게 매우 중요하다. 옳은 것을 빨리 판단을 내리고 자기 것으로 하면 사람이 빨리 올라가고, 빨리 달아나고, 먼저가 되고, 머리가 되는 건데 어정쩡하면 말씀은 잘 듣는 것 같으나 생활 속에서 믿음으로 살지를 못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생전에 주시는 은혜를 다 받고 가야 한다. 사람들이 진짜 보석에 욕심을 내면서 왜 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지혜지식, 도덕성, 능력성은 가지려고 하지 않을까? 왜 손해만 보며 살려고 할까?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신 것 같으냐, 당신의 영광을 구한 것 같으냐?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자꾸 하나님의 능력을 달라고 한다면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거냐,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거냐? ‘주님의 만능의 능력을 나에게 조금만 주셔서 나도 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고치면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니 그 능력을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한다면 주님께서 이런 나를 보시고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만하구나이러시겠느냐, ‘너부터 고치고 너부터 온전자가 되라라고 하시겠느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다. 12: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했고, 17:에서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하셨는데, 안 믿는 사람에게 이 말씀을 해석을 하라고 하면 이들은 문자적 글자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으로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는 질이 전혀 다른 말이 나와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한다고 하는 게 무슨 가견적인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말인지, 아니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에 맞는 인간구원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건지?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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