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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예레미야 50:33~46
하나님께는 아버지의 근엄함과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근엄함은 덕을 세우고 건강한 인생이 되는 일에 무한한 용기가 됩니다. 하지만 인생은 약한 법이어서 쉽게 넘어지고 실수하여 절망합니다. 그런 경우에 주님의 자애로움은 위로와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이를 신학에서는 ‘초월’과 ‘내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인생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며 자신의 뜻을 인생과 세상 속에 실현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죄를 지은 이에게 견책하시며 세상의 어떤 제한에 구속되지 않으십니다. 무소불위의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한편 약자에 대하여서는 무한한 동정과 긍휼의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약하고 가난한 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 만일 하나님께서 초월적으로만 존재하시면서 내재성이 없다면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 되어 백성에게 공포가 될 것이고, 하나님께 내재성만 있고 초월성이 부재하다면 무능력하고 감상적인 존재가 되어 그 백성이 방자해질 것입니다. 다행히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께는 초월성과 내재성이 공존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모범을 요구하시고,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다 함께 억압을 받고 있다.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모두 그들을 단단히 붙잡아 두고, 보내 주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 이름은 ‘만군의 주’다. 내가 반드시 그들의 탄원을 들어주어서 이 땅에 평화를 주고, 바빌로니아 주민에게는 소란이 일게 하겠다.”(50:33~34)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를 심판하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한 점입니다. 한때는 바빌로니아를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학대가 계속되자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신음을 들으시고 친히 구원자를 자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에 대한 진노를 북방의 한 나라를 통하여(50:49) 실현하십니다. 온 세계와 역사가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주님,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힘을 제 멋대로 사용하여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고 힘없는 시민을 차별하는 권력에 대하여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주님, 저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2024. 8. 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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