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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반성
시편 106:1~12
“우리의 조상이 이집트에 있을 때에, 주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그 많은 사랑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로, 바다 곧 홍해에서 주님을 거역하였습니다.”(106:7)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로니아 포로기를 겪고 있습니다(47). 나라를 잃고 성전이 파괴된 후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무너졌고 유다는 바빌로니아의 힘 앞에 속수무책이었는가를 자문하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머뭇거렸던 일을 회고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두 눈으로 보며 이루어진 출애굽인데 가로막힌 홍해 앞에 히브리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뒤에서 쫓아오는 파라오의 군대가 무서웠습니다. 언제나 장애물이 없는 진보는 없습니다. 장애물의 난이도보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때의 불순종을 기억하며 오늘 바빌로니아 유수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믿음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오늘 우리도 왜 역사의 퇴행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피땀 흘려 이룬 민주적 절차는 무지한 지도자의 ‘거부권’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 정체성은 심하게 흔들리고 사회적 약자의 지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정의와 상식과 윤리가 짓밟히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한 지도자가 외치는 ‘자유’는 수만 번을 외치더라도 공염불에 불과할 뿐입니다. 평화를 모르는 이가 ‘평화’를 외치고, 인권을 모르는 이가 ‘인권’을 소리치고, 정의를 모르는 이가 ‘정의’를 부르짖고, 통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가 ‘통일’을 노래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시대는 언제나 막을 내릴런지요?
함량 미달의 지도자가 젠체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 탓만은 아닙니다. 깨어있지 않은 시민, 하나님 나라를 통치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천당’으로 인식하는 한국교회가 더 큰 문제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가치관에 젖은 이들이 쥐락펴락하는 세상에서는 서울을 못 갈 뿐만 아니라 발병이 나기 십상입니다.
주님, 오늘 저희도 홍해 앞에서 주눅 든 히브리인들처럼 새로운 시대 열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주셔서 장엄한 새역사의 오심을 온몸으로 맞을 수 있는 담력을 주십시오.
2024. 8. 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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