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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좇아서…
열왕기하 2:1~14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쫓아 갑니다.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으로 줄기차게 좇습니다. 가는 곳마다 선지 생도들이 이들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스승의 뒤를 이어 우상의 땅에 예언자로 우뚝 섭니다. 전에는 신학교를 선지학교, 또는 선지동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선지자의 학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대로 이스라엘은 제사장을 중심으로 신앙이 제도화되었습니다. 이동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성막은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신학을 담은 구조물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솔로몬에 의하여 성전이 건축되면서 예루살렘이 특정되어 거룩한 곳이 되었고 사람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비(非)예루살렘, 비(非)성전은 비(非)거룩, 곧 세속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룩이 특정화되면서 바쁜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므로 속죄가 필요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제사드리는 이들이 성전을 찾았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을 순례하였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하는 일에 부름받은 종교인으로서 분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는 대로 역사의 고비마다 예언자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제사장은 레위지파에게 부여된 세습직인데 비하여 예언자에게는 자격 여부가 따로 규정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은 어릴 때부터 구별된 의식을 갖고 성장하였지만, 예언자에게는 그런 규례가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보장된 분깃이 있었지만, 예언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이 기다리는 사역자라면 예언자는 찾아가는 사역자입니다. 예언자는 죄와 불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였습니다.
교회를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확인하며 예배하고 교육하며 성도 간 사귐을 중히 여깁니다. 흩어지는 교회는 받은 은혜를 세상에 나누고,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선교적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기 위한 전 단계의 교회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마땅한 구조입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목회자보다 예언자가 필요합니다.
주님, 신학생 시절에 선지동산을 오르내리면서 예언자 정신을 배우기보다 제사장 정신을 배웠습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가 피폐해진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부끄럽고 송구합니다.
2024. 9. 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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