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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 다른 반응
열왕기하 3:1~12
여호람이 왕이 되었을 때 모압이 반기를 들었습니다(1:1, 2:5). 그동안 모압은 막대한 조공을 바치며 굴욕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아들들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이스라엘 국력이 약화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국제 사회는 힘의 역학관계에 아주 민감합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으로 이스라엘과 멀지 않은 혈연관계에 있었으나 두 민족은 늘 갈등과 대결하는 관계였습니다.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가능한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국가 건설을 한 후에도 모압은 늘 위협적이었습니다. 사울 시대에 비로소 모압을 힘으로 눌렀고(삼상 14:47) 다윗 때에는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쳤습니다(삼하 8:2, 11~12). 솔로몬이 모압 공주와 결혼하므로 우호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왕상 11:1).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열된 후 오므리 왕조 때에 모압은 어마어마한 조공을 바쳤습니다(2:4). 그러나 아합이 죽은 후 모압은 독립을 꾀하였습니다.
여호람은 남왕국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함께 모압을 응징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선선히 응대하므로 모처럼 남북 왕조의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역사와 언어와 문화와 신앙 유산을 가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합은 반가운 일입니다. 쉽지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호기가 민족 평화와 일치에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오늘날 남북한의 분단 상황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은 에돔의 동참까지 이끌어 내면서 파죽지세로 모압을 압박하였습니다. 하지만 생각지 않았던 복병을 만났습니다. 모압을 추격하는 이레 동안 물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군사들은 물론 가축들도 물을 마시지 못해 기진맥진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여호람은 “아, 큰일났구나! 주님께서 우리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겨 주시려고 불러내신 것이 아닌가!”(2:10) 탄식하며 절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여기에는 주님의 예언자가 없습니까? 이 일을 주님께 물을 예언자가 없습니까?”(11)고 물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처신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믿음이란 한계상황에 처할 때 드러납니다. 주님을 향하여 눈을 뜨는 일이 바로 믿음입니다. 현실 너머의 세계와 소통하는 일입니다. 저희에게 그 믿음을 주십시오.
2024. 9. 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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