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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3 추천 수 0 2024.09.08 09:27:25
.........
성경본문 : 요7:18-19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718-19: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자기 영광만 구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 믿는 사람이 타락된 세상이 좋아하는 세상 물질축복 주의로 예수를 믿거나 외모 모양이나 덩어리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 외식에 속한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한다고 하는데, 세상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사적인 것이고, 많은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공적인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위한 것이던 여러 사람을 위한 것이던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는 것은 사적인 것이고, 자타의 구원에 관한 것을 구하는 것은 공적인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한 사람이 구하던 여러 사람이 구하던 하나님의 진리본질에서 이탈된 것을 구하는 것은 전부가 자기 스스로의 영광을 구하는 거다. 한 사람이 온 세상사람들을 위해 구해도 스스로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구해도 스스로다. 한 마디로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차원에서 구하는 것은 전부가 스스로다. 사상의 질이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에 숫자가 쓰여진 게 있는데, 이 숫자를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이나 물건의 숫자로만 생각하지 말고 사람의 숫자일 경우에는 그 숫자의 사람들이 어떤 인격과 성품과 사상을 가졌는지를 봐라. 사람의 숫자가 적으면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그 사상을 가졌는가?’를 보고, 많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상을 가졌는자?’를 봐라. 성경을 보면서 사람의 인격과 성품에 관계된 것을 못 깨달으면 이것을 알지 못한다. 안 믿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전부가 스스로다. 한 사람이 구하던 열 사람이 구하던 세상의 것을 구하는 것은 전부가 스스로에 들어간다. 세상 것을 구하는 사람은 열 사람이던 백 사람이던 다 스스로에게 기준이 되어있다.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불의가 없다고 하느냐?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불의가 없다고 한다. ‘불의의 반대는 정의인데, 이 정의를 하나님께 붙여서 말할 때는 공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공의이시다. 아버지의 영광은 공의로 된 영광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온전을 입으면 공의로운 사람이 된다. 이 공의로운 영광을 구하는 자가 참되다고 하는 거다.

 

공의로운 영광을 구한다는 말은 늘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타를 하나님처럼 만들기 위한 뜻과 주장을 하는 것을 공의라고 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한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는 거다. 하나님의 공의로 만들어진 영광은 그 속성이 하나님의 온전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님의 공의로 되어있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심판을 받지 않는 공의다. 이 공의성을 가지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는데, 사람을 인도할 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해야 하고, 판단을 하게 하려면 절대 정확한 기준을 줘야 한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이게 아니라 좋고 나쁜 것의 절대 정확한 기준을 주면 받는 사람이 그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해서 옳은 것을 가지게 되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게 없어서 누가 이 말을 하면 하고 그리로 몰려가고, 누가 저 말을 하면 하고 그리로 몰려간다.

 

하나님의 온전으로 된 공의의 속성이 아니면 그 무엇을 구해도 임시적 가견적 물질적인 것이요, 모두가 멸망될 땅의 것들이다. 참 영광이 아니라 거짓된 영광이다. 거짓된 영광은 시간에 따라 변질이 되고, 상황이 변하면 역시 변한다. 예수님은 땅으로부터, 세상 것으로부터, 세상사람으로부터 된 영광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예 천국으로부터의 영광이요, 하늘의 것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주신다.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사람을 죽인다고 할 때 무기나 연장을 가지고 죽이는 게 있고, 말로 사람의 인격을 죽이는 게 있고, 눈에 보이는 면으로는 좋게 해 주지만 결과적으로 눈에 안 보이는 면을 다 망하게 하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거다.

 

예를 들면 학생이 학교는 안 가고 친구를 꾀어서 오락실로 데려가면 두 학생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 좋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실력은 망한다. 예수를 믿는 것도 성경을 가르쳐 주는 것은 없이 충성봉사를 강조하게 되면 사람이 인격적으로 바뀌는 게 없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셈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고 따르라라고 하는 것은 예수 당신처럼 만들어 주겠다는 거다. 종교적인 일이나 사역 쪽으로 나가면 이게 없다. 믿는 사람이 이룰구원을 잘 이뤄나가는 것에는 일도 들어있고, 활동도 들어있는 것이니 이룰구원을 위해 종교적인 일을 하고 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요, 천국복음이요, 하늘나라의 일이 된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이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미간이나 옷깃에 성경구절을 써 붙이고 다녔고, 아침저녁으로 성경구절을 외우는데 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하시느냐? 그리고 이들은 왜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을 죽이려고 하느냐?

 

율법은 인간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 죄를 지적하는데 이들은 율법을 액면적 행동적 활동적으로만 지켰지 율법 속에 들어있는 이 뜻을 몰랐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거다. 오늘날 교인들도 이런 신앙이 팽배하다. 예수 믿고 말씀을 배우면서 자기의 속사람이 살아나고 속사람이 커져야 하는데 이건 없이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일반사람들의 속화되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정신을 그대로 가진 채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바로 믿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정신으로 믿으면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어도 속사람이 안 바뀐다. 자기가 예수를 믿고 바꿔졌는지, 안 바꿔졌는지 웬만하면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애굽에 내려갈 때는 70명이라는 작은 숫자였지만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후손들이 많이 불어났지만 400여 년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죄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보내서 애굽에서 탈출시켰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

 

이 율법으로 통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고, 그 죄를 지었을 때는 어린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게 하셨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속죄와 구원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 양이 인간 대신 죽는 것은 동물의 피로 인간의 죄를 속해준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 죄를 사함받으려면 죄인 대신 죄가 없는 한 인간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게 하는 거다.

 

또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자면 죄가 없어야 하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며 쌓은 실력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누리는 게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게 하려니 하나님의 율법이 필요했고, 광야생활도 필요했던 것인데, 이는 지금의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천국에 들어가서 그곳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누릴 수 있는 영능의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이게 광야교회 생활이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본래부터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 설령 성경 문자대로 지켰다고 해도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영적인 은밀계시가 들어있는데 이것을 전부 지켜야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거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지키기 이전에 죄인이 아니라야 하기 때문에 인간은 은밀계시를 지킬 수 없는 거고 은밀계시를 전부 지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님뿐이다. 율법이 요구하는 은밀한 뜻은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라야 지킬 수 있는 거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이라야 지킬 수 있는 거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하나님이라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서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하나님의 신,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입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 주셨다. 그래서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알고 말씀을 따라 살면 신의 도움으로 말씀을 깨닫게 되고, 선한 양심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신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철저히 지켰지만 하나님의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살인에 대해서도 이방인들도 다 아는 사람의 육신을 죽이는 살인만 알았지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진리를 미워한다면 하나님을 싫어하는 거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사람을 미워하는 쪽으로 들어간다. 이런 사람은 설령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는 반대다.

 

미움은 살인을 전제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미움이 살인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남을 미워는 하지만 자기가 실제로 다른 사람의 육신을 안 죽였으면 살인을 안 했다고 본다. 그러나 주님 앞에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게 살인이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은 적극성이요, 건설이요, 행복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세상 쪽으로 달려가면 하나님을 아는 면이 빈약해진다. 인간을 아는 면도 빈약해진다. 이러면 자타가 고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바로 알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적극적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깨닫는 것 조차도 안 하려고 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영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자신들의 이룰구원을 위해 이 땅에 살면서 죄를 이기고, 마귀의 유혹과 미혹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신 예수님의 정신을 모른다. 주님의 이 삶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만 아니라 지금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거다. 율법(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풀어서 자유를 주기 위해 주신 거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고집하는 외식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코자 하시는 예수님의 삶을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했다. 자기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죽였으니 자기 스스로가 자기 구원을 죽인 셈이고, 자기 구원이 안 되니 심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게 주님 영접이다. 이러면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 말씀을 안 받아들이면 아무리 일반적으로 바로 살았어도 영적인 면은 죽어 나간다. 이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따라붙게 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해석을 하면 바른 해석이 안 된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의 것을 주기 위함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이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것을 주시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미리 세상을 만들어 놓은 거다. 그러니까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믿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 것을 이용 활용 응용해서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라는 거다.

 

이 세상은 믿는 우리의 신앙의 훈련장소이니 우리가 세상 것을 이용 사용 활용해서 자타의 구원을 이뤄가야 하나님께서 영광이라고 하시지 세상 것을 욕심내고 많이 가지는 것을 영광이라고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만들어지는 사람일수록 자기에게 주어지는 물질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을 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적극적인 삶이 된다. 바로 깨달으니 자유자가 되고, 영능의 실력이 있으니 자유자가 되고, 이 자유를 가지고 점령해 들어간다. 이게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점령성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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