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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7 추천 수 0 2024.09.22 09: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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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7:24-26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724-26: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인정정실에 치우치거나, 혈육에 치우치거나, 사람의 사정을 보고 판단을 굽게 하거나, 물질적인 조건에 따라 판단을 하는 등등의 판단을 하지 말라는 거다. 이런 기준의 판단은 주님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교훈이 들어가지만, 영접이 되지만 공의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인간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만 강조를 하게 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은 언제든지 옳고 사람을 바로 세운다. 그러나 사람들의 판단은 세상의 판단이요 세상 법적인 판단이라서 전부가 사람의 외모로 판단을 한다. 세상의 판단은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한데도 확실한 증거물이 없으면 판단이 흐려지기도 한다. 세상의 판단은 선악과 따먹은 데서 나온 지식을 따라 하는 판단이라서 정확하지 않고, 따라서 억울한 판단을 받은 사람도 많을 거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최종적으로 정확하신 하나님의 판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것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는 변질이 없다. 하나님의 것은 영원히 가고, 신령한 거고, 행복한 거고, 나의 존귀 영광이 되는 거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말씀을 따라 하는 판단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판단이라서 정확한 거고 영원한 거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의 판단을 따라 살면 영능의 실력이 쌓이게 되고,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것으로 된 것이라서 죽음 저 너머에서도 효력을 보게 된다. 이게 천국 누림의 효력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이걸 몰라서, 잘못 가르침을 받아서 엄청난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 이 손해는 물질의 손해를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로 된 주님을 기준으로 보는 거다. 즉 인간창조의 목적을 기준으로 따지는 거다. 우리가 몰라서, 잘못 가르침을 받아서 지난 세월 동안 신앙에 손해를 본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일인데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을 또 그렇게 살면 되겠느냐?

 

주님께서 공의로 판단하라고 하셨는데, 공의의 판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이요, 하나님의 판단이다. 공의의 판단은 구원에 관한 판단이고, 외모의 판단은 세상 것에 대한 판단이다. 공의의 판단은 신령성에 속한 판단이고, 외모의 판단은 시간에 속한 판단이고, 공의의 판단은 실상에 속한 판단이고, 외모의 판단은 물질 소유성의 판단이다. 이방인들은 공의로 판단을 할 수 없다. 사람을 공의로 판단하는 것은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성도에게 해당이 되는 거다.

 

25-26: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전제하게 되고,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율법이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과는 달리 확실한 믿음을 가진 것을 전제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신앙과 다윗의 진리통치를 아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사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이렇게 생각이 들어간다.

 

예루살렘의 백성은 죄 사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요,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율법사와 서기관이 있고, 그래서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은 도덕성의 차원이 높은 거룩한 성민이요, 모세나, 다윗이나, 미가 선지자나, 이사야 선지자 등을 통해 메시아의 약속을 받은 신분적 지식적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선민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내용의 성질이 들어있는 건데, 이걸 알고 예수를 믿고 있고, 이걸 알고 교회에 다니고 있는 거냐? 이런 위치요 신분인 우리는 하면 공의의 판단이 나와야 한다.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하나님의 특수은총과 일반 자연은총을 받은 백성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독성이 나올까? 왜 자기들의 구원의 주를 죽이려고 할까?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구원의 주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께서 드러나게 말씀을 하는데도 왜 아무 말도 못하고 잡지도 못할까?

 

첫째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잡히고 안 잡히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주권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주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잡혔다고 해도 이 사람들이 놓아주면 놓임을 받고, 안 놓아주면 붙들려 있는 분이 아니다. 무엇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느냐? 주님께서 죽고, 살아나고, 부활하는 것을 보면 당신의 생사를 당신이 좌우지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주님이 붙잡혀서 고난을 받고, 죽고 하는 게 누구의 주권에 의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느냐? 인간에 의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 인간의 주권, 세상의 주권에 의해 예수님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고난을 받고, 잡히고, 죽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 한 마디로 세상만물을 만들고, 자연만물을 섭리하고 보존 성장케 하는 분이고, 인간을 만들고 섭리 보존하는 분인데 이런 분의 생사가 사람의 손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님의 활동이나 생사가 인간에 의해 좌우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알고 보면 당신의 주권적 역사로 예수 믿는 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손에 의해 되어지게 하시는 거다. 이 사실을 알고 모르는 것에 따라 성경을 깨닫는 게 천지 차이가 난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우리가 창조의 목적을 깨닫고 보면 인간과 귀신은 질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성령과 악령은 영이라는 점이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 질이 똑같은 거냐? 인간의 용어로 이라고 하기 때문에 비슷하게 생각이 되지만 전혀 다른 거다. 근원적 질적으로 다르다. 같다면 서로 싸우지를 않는다. 그런데 구별 분별을 못하니 비슷한 것으로 느끼는 거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는데, 이 풍랑을 마귀가 일으킨 거냐? 마귀가 한 것이라면 마귀는 주님과 동등의 주권자가 된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주권적으로 일으키신 거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이성적 작용으로 일어나는 정신세계가 있고, 영적 정신세계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는 병자를 고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정신세계가 온전치 못한 것을 고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거다. 그런데 이 면을 모르는 교인들은 자꾸 육신의 병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마귀의 꾀임에 얼마나 잘 넘어가겠느냐?

 

주님께서 눈에 보이는 육적인 면을 고치시는 것은 가견적 모형적 상징적 비유적인 것으로 우리의 실상인 영적인 면이 낭파가 되어있고 망가져 들어가는 것을 고치신다는 거고, 고치라는 것인데 믿는 사람이 이걸 진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걸 진하게 느끼는 사람이 신앙이 깊은 거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드러나게 말을 했는데도 붙잡지 못하는 것은 겁이 나서가 아니라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하지 않고 외모 모양 껍데기 위주로 믿는 사람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드러나게 말을 해줘도 그 실상을 붙잡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님께서 영적 진리이치, 영적 생명이치, 영적 도덕이치를 분명히 알아듣도록 드러나게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그 실상을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한 거다. 선생님이 수학공식을 말해줄 때 하고 알아듣는 학생은 실력이 자라지만 못 알아들으면 자기 실력이 안 자라고 이 수학공식이 자기 것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들이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은 모르면 아무 말도 못한다는 거다. 어디서 원인이 발단이 되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니 아무 말도 못하는 거다. 자기의 말이 이쪽저쪽에 걸리게 되면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이쪽에 걸리면 이쪽에서 야단을 맞게 되고, 저쪽에 말이 걸리면 저쪽에서 야단을 맞게 된다. 자기의 지식과 양심을 따라 이쪽으로 말을 하면 이쪽에 걸리게 되고, 저쪽으로 말을 하면 저쪽에 걸리게 되면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예를 들면 안 믿는 사람이 영원히 오래 오래라고 말을 할 때 우리가 이 말을 영의 눈으로 보면 안 믿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물질성적으로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영원한 신령계 쪽에도 걸리게 되고(맞지 않게 되고), 물질세계에는 영원한 게 없기 때문에 임시성적인 물질계에도 걸리게 된다.

 

예수님께서 드러나게 말을 했는데도 붙잡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는 말은 입만 열면 죄가 되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 거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셉의 식구라는 것밖에 모른다. 확실히 알고나 죽이든지 말든지 할 것이지 알지도 못하면서 왜 죽이려고 할까?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이 말은 나라의 높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았다는 불평불만의 소리이기도 한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면, 1. 감히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했기 때문이고. 2.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안식일에 많은 병자를 고치면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문자적으로 보면 쉬는 날이라는 뜻인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우리 아버지가 일을 하시니 나도 일을 한다라고 하니까 그들이 들을 때 기가 막힌 거다. 그래서 죽이려고 하는 거다. 그러면 오늘이 주일인데, 주님께서 주일날 일을 하시느냐, 안 하시느냐? 하신다. 무슨 일을 하시느냐? 구원의 일을 하신다.

 

세상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구원의 일을 모르고, 안 한다. 오로지 육의 일, 잘 먹고 잘 사는 쪽의 일만 한다. 눈으로 보이는 일만 한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구원의 일을 안 한다면 일을 하는 사람이냐, 안 하는 사람이냐? 안 하는 사람이다. 이러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거냐? 구원의 일을 안 하면 자동적으로 세상 육의 일은 하는 거다. 육의 일을 안 하고 편히 쉰다고 해도 세상을 생각하기 때문에 육의 일을 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적극성이 들어가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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