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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딸
열왕기하 11:1~21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야는 남북 화해시대의 상징으로 유다 왕 요람(여호람)과 정략 결혼하였습니다. 그녀는 사마리아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고 바알을 숭배하였으니 하나님을 섬기는 예루살렘 분위기와 적잖은 갈등이 있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게다가 요람은 아버지 여호사밧의 좋은 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 형제들이 왕위를 넘보는 것도 아닌데도 형제들을 처단하였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검찰권을 이용하여 먼지 털 듯 경쟁자인 야당 지도자들을 탄압한 셈입니다. 모름지기 아달랴의 계략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군주시대이기에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주권재민 시대인 오늘날 시민의 선택을 받지 않은 대통령의 부인이 그런 행태를 벌인다면 심각한 국정농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무렵 유다의 지배를 받던 에돔이 독립을 시도하였고 여호람의 아들들은 아하시야를 제외하고 모두 살해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눈 밖에 난 여호람은 백성의 지지도 받지 못해 죽은 후에도 역대 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는 수치를 겪었습니다. 권력은 지혜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여야 인정을 받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권력을 지향하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추구합니다. 요람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으나 일 년 만에 죽자 유다 역사상 전무후무하게도 북왕국 출신 여성 왕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세벨의 딸 아달랴입니다. 그는 아들 아하시야의 죽음 이후 모든 왕자를 죽여 다윗 가문의 맥을 끊으려 하였습니다. 다행히 왕자 요아스가 그의 고모 여호세바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구출되어 아달랴가 다스리는 여섯 해를 숨어 살았습니다. 여호세바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아달랴의 딸이었지만 그 어머니의 성정을 닮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달랴는 이세벨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딸 여호세바는 아달랴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고 반갑습니다. 그렇게 하여 다윗의 계보는 이어졌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길도 열렸습니다. 여호세바가 아니었다면 큰일날 뻔 하였습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세벨의 딸은 이세벨의 악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세바는 악한 어머니 아달랴의 요망하고 간사한 성정을 닮지 않았습니다.
주님, 혈연에 속하여 대의와 명분을 외면하는 이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혈연보다 정의와 믿음을 따르는 용기를 주십시오.
2024년 9월 2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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