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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역할
열왕기하 12:1~21
요아스는 이세벨의 딸, 사악하고 교활한 아달랴가 왕자들을 학살할 때 고모인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왕자입니다. 그의 고모부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입니다. 여호야다는 악한 군주 아달랴가 여섯 해를 다스리는 동안 어린 왕자를 보호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달랴를 내쫓고 다윗 왕조를 회복하는 일도 여호야다가 주도하였습니다. 그 역시 생명을 걸고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여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나이가 일곱 살 어린 나이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어린 왕 곁에서 아달랴가 예루살렘에 세운 바알 신당과 우상들을 깨트리고, 바알 제사장을 처단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 함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어린 왕을 앞세워 정치적 농단을 일삼거나 개인적 이득을 취한 일은 없습니다. 왕의 가까이에서 왕이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호야다에게서 정치를 보는 교회의 안목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정의의 문제는 예언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여호야다는 제사장으로서 정치적 행동을 하였습니다. 한때 한국교회는 교회의 정치참여를 터부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정치는 사회 통합에 틈이 벌어지고, 민족 화해를 역행하여 전쟁을 향해 치달리며 일본과는 친밀하기 위하여 과거를 따지지 않으므로 역사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이런 정치를 열렬히 지지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습니다. 정치란 시민 각계각층의 서로 다른 의식과 권리가 반영된 고도의 사회적 행동이니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사회를 통합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할 교회가 정치의 어느 한 편에 서므로 시민 사회에 위화감을 일으키거나 사회 분열의 앞잡이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지와 몰상식과 불의와 악을 방관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정의와 평화가 위협받을 때 무관심하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시대 교회는 정치 안목이 너무 결여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가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을 배우지 못한 탓입니다. 그렇다 보니 왜곡된 정치에 몰입하거나 지나치게 오염된 정치 담론을 편식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 땅의 교회가 여호야다 만큼만이라도 정치적 의를 추구하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안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지몽매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2024. 9. 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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