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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일기267-9.23】 살금살금
쑥티고개 올라가는 가파른 골목 끝에서 두 번째 집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골목길을 내려가신다. 지팡이를 짚고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처럼 살금살금 조심조심 걸어가신다.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실 것 같아 너무나도 위태하고 너무나도 가볍다.
차도 저 걸음에 맞추어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천천히 따라간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로 비키라고 빵빵거리거나 할아버지를 앞서가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저 모습이 나의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무서울 것 없이 자신만만했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이제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으면 눕고, 그렇게 누워서 못 일어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인생에는 안타깝게도 리셋(reset)이 없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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