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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의 해시계
열왕기하 20:1~11
“해그림자를 십도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나게 해주십시오.”(20:10)
히스기야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삶에 애착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누구나 죽지만 삶은 모두에게 소중한 법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삼 일만에 병의 고침을 받아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의 수명도 15년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아시리아의 위협에서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표로 해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해그림자를 십도 더 나아가게 하는 일이나 해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나게 하는 일이나 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해그림자를 뒤로 물러나게 하는 일은 나아가게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고 소개합니다(기브아의 전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수 10:12~15).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하여 의문이 듭니다. 성경이 이런 비과학적(또는 초과학적)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신학을, 또는 진리를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여러 논쟁이 있습니다. 과학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과학으로 입증되어야만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교회 안에서 일고 있는 ‘창조과학’이라는 논리도 여기에서 포함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창조과학’을 부정하거나 의문을 재기하면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과학은 진리를 측정하는 유일무이한 척도일까요? 과학은 만능일까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는 없을까요?
결국 아하스의 해시계 그림자는 십도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 시계는 아마도 아하스가 자신의 청을 듣고 시리아의 르신을 격퇴한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을 만나러 다마스쿠스에 갔다가 거기서 가져온 문물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16:10). 문명은 배척할 것이 아니라 잘 수용하여 사용한다면 하나님 역사의 증표를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eh 있습니다.
주님, 악인일수록 삶에 더 집착하는 세상에서 선한 의인들이 현실을 방관하지 않기를 빕니다. 의인의 승리를 믿습니다.
2024. 10. 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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