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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기록하다
열왕기하 22:1~20
요시야 시대의 근동은 매우 급하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패권국가 아시리아가 쇠퇴일로를 걸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주전 669~626)이 죽고 그의 아들 신샤르 이슈쿤(주전 626~612)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아슈르바니팔은 산헤립의 아들로 이집트와 시리아와 이스라엘과 유다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는 중동에 흩어져있는 점토판을 모아 체계화하는 도서관을 세우고 <천일야화>와 <길가메시>의 원형을 수집하는 등 문화의 제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죽은 후 갈대아의 나보폴리살이 메대와 연합하여 반기를 들고 바빌로니아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아시리아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틈을 이용하여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의 패권을 다시 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정세에서 요시야 왕은 성전 수리를 단행하였습니다. 군사를 모으고 무기를 만들어 국방력을 증대하는 일을 할 때에 그는 성전 보수 공사를 하였다는 점이 생경해 보입니다. 국제정세에 무딘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만 본디 신정국가인 유다의 정서에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왕의 명을 받들어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의 부서진 것을 수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이런 일은 일상이어야 하는데 한동안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제도로 형식화되거나 무디어진 탓이고, 아합의 길을 따르는 왕들이 종종 나타나 신정국가 유다의 정체성을 퇴행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전 수리를 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사건입니다. 제사장 힐기야는 이 책을 즉시 서기관 사반에게 건넸고 사반은 이를 요시야 앞에서 읽었습니다. 왕은 자기 옷을 찢으며 국가적 회개와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성전 수리 중에 발견된 율법책의 내용은 지금 유다가 본질로부터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지를 알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과 삶의 기준입니다.
이즈음에서 이 율법책을 기록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율법책을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문자의 힘을 믿습니다. 펜은 총칼보다 강합니다. 경청도 좋지만 독서는 더 좋습니다.
주님, 언변도 좋아야 하지만 글솜씨가 더 소중합니다. 오늘 교회 안에 화려한 말솜씨보다 수려한 글솜씨가 우대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피를 찍어 글을 쓰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024. 10. 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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