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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나이의 무게
디모데전서 5:17~6:2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걱정이 하나 늘었습니다.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에는 치기 어린 생각과 행동을 해도 아직 어려서 그러려니 보아 넘겼습니다. 하지만 귀 밑머리가 희어지고 머리숱이 적어지면서 링컨이 했다는 ‘나이 마흔 살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말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의 얼굴은 부모가 만들어 주지만 중년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만드는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얼굴에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므로 허투루 살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종종 우리 시대에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심지어 교회에도 어른 부재 현상은 보입니다. 나라 꼴이 이렇게 엉망인데도 야단치는 어른이 드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속절없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회초리를 드는 어른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몇 분뿐입니다. 한때 존경받던 교회 지도자들…, 내가 청년 시절에 존경해 마지않던 분들…, 그분들의 책을 사서 열심히 읽고 공부했습니다. 사표로 삼고 싶었고, 닮고 싶었습니다. 내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하는데 모델이 되어 주셨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분들은 자신이 쓴 책과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듯하여 속이 상합니다. 평소에 강조하던 가르침을 역행하는 언행을 하고 있어 적잖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속은 기분이 들어 몹시 불쾌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두 배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은 더욱 그러하여야 합니다.”(5:17)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오도온(1804~1864)의 《큰 바위 얼굴》(1850)이 생각납니다.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얼굴과 흡사한 바위에 어린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을 듣고 그런 인물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며 성장합니다. 큰 부자와 여러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과 훌륭한 정치가와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에게서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이 실현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평범한 농부가 된 어니스트는 예배당에서 사랑과 진실을 설교합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있던 시인이 어니스트에게서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여전히 큰 바위 얼굴의 사람을 기다립니다.
주님, 어른이 없다고 푸념할 나이가 아니어서 슬픕니다. 아직도 분별력 있는 어른이 되지 못해 더 슬픕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두렵고 나이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2024. 11. 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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