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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같은 하나님?
디모데후서 2:1~13
현존하는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이름 붙인 이는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총장 칼 폰 린네(1707~1778)입니다. 식물학자인 그가 그런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였습니다. 근대인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근대 이전에도 사람은 생각하였지만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기 시작한 후, 그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 그게 인류 역사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자보다 약하고 늑대보다 느리고 새처럼 공중을 날거나 물고기처럼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없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직립보행을 하게 하였고 하늘의 불을 훔쳐다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맹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어둠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문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에 묶어두고 정기적으로 독수리로 하여금 간을 파먹게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명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최초의 여자 판도라를 만들게 하여 인간 사회에 불행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스 신 제우스는 인간이 행복한 꼴을 못 보는 고약한 신입니다. 인간이란 신을 위해 존재하는 장난감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신관이 이와 유사해지고 있습니다. 이천 년 교회 역사를 통하여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인간이 행복하면 불편해하는 제우스 같은 신으로 성경의 하나님을 왜곡시켰습니다. 그것을 ‘정통신앙’이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이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인본주의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제우스보다 더 고약한 하나님이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2:8) 바울이 디모데에게 환기시키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 죽임당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올림포스의 신 제우스로 착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 주님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창조하시고 매우 만족하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불편하게 여기는 풍조가 오랫동안 교회 안에 스며 있습니다. 생각하는 신앙이 참신앙입니다.
2024. 11. 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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