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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월요 편지 3574]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우울증 완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2월 23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앞으로 이틀이 지나면 주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지난 21일에는 이곳 김포에 약간의 눈이 내렸습니다. 아무튼 화이트크리스마스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성탄절에도 하나님의 크신 영광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드라마로 삼국지를 보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유비의 뛰어난 용인술(用人術)이었습니다. 그가 그 유명한 제갈량을 부하로 삼을 때에는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간신히 군사(君師)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공고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뽑힌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솜씨는 훌륭한데, 그 행색이 초라하고 술 주정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뛰어난 현인(賢人)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유비는 적극 그를 부하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를 부하로 삼고자, 유비는 그가 술 좀 받아오라고 청하자, 유비는 기꺼이 술을 사다가 대령했던 겁니다.
스물넷부터 직장을 다녔고, 스물아홉에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착실하게 산 덕에 제 명의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빚쟁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내는 장인어른의 사업에 연대보증인이 되었는데, 그만 장인어른의 사업이 망하게 되자, 그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살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급한 불을 껏지만, 또다시 모르는 빚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태껏 열심히 살아온 것밖에 없는데, 제가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의 빚을 지게 되자, 너무도 버거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나 죽을 것 같아. 이대로는 못 살겠어. 얼른 병원 알아봐 줘.”
집 근처의 정신병원에 갔습니다. 저는 진료를 받다가 별 이유 없이 의사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쏟아냈습니다. 의사는 ‘증세가 심각하니 곧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특진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담당 의사는 “울고 싶으면 그냥 울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비로소 저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을 치료받으며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이어 가던 중, 제가 모르는 또 다른 빚이 숨통을 조여 왔습니다. 결국 아내와 협의이혼을 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저와 있기로 하고 막내는 아내가 데리고 갔습니다. 사는 게 무의미해졌습니다. 우울감이 커져만 갔습니다. 의사는 ‘지금 상태로는 3년 정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00살 기준으로 볼 때 3년은 짧아요. 3년 치료하고 나머지 평생을 잘 살아야죠. 이대로 살다가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 말에 충격을 받아 다짐했습니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아내와 아이들.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내가 제대로 살아야 한다.’
그 뒤, 저는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휴무도 안 쓰고, 휴가도 안 가고 푼돈이라도 모두 모았습니다. 그렇게 빚을 다 갚은 날, 그제야 숨통이 트였습니다.
3년 동안, 저는 참고 견디며 가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습니다. 아내와 막내아들은 다시 저에게로 돌아왔고, 우울증도 완치됐습니다. 지금 나이 쉰하나, 새 삶이 주어진 것만 같습니다.
사람 사는 게 정답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굴곡이 없을 수 없습니다. 지나고 보니 우울하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처럼 우울증을 앓다 완치된 선배의 말이 기억납니다. “잠자고, 밥 세끼 잘 먹고!”
맞습니다. 그게 정답입니다.(출처 2025년 1월호 좋은생각에서, 서 강, 경기도 파주)
●하나님은 때리시다가도 그 상처 싸매주는 분 아니시던가. 손수 벌을 주시다가도 또 손수 어루만져주는 분 아니시던가.(욥5:18)
●각자의 작은 신념과 본분을 지키며 묵묵히 걷는 수많은 이름 없는 인간의 삶이 우리를 이끌어왔습니다.(정은귀)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시금치도 아는 부끄러움
시금치도 부끄러움을 압니다. 뿌리 쪽이 발갛게 물든 채소를 보고 하이쿠 시인 스즈키 다카오(鈴木鷹夫·1928~2013)는 노래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 눈보라에 맞서 한파를 이겨 내고 자라난 노지 시금치는 뿌리가 더욱 붉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시금치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더 잘 아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행을 미워하는 마음. 맹자는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시금치의 빨간 뿌리에는 피를 만드는 망간과 철분이 풍부합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일도 우리 몸의 미네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피를 돌게 합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이미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모른 채 살아간다면 한 줌 따스함도 없는 악귀와 무엇이 다를까요?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나’는 세 번 결혼했습니다. 가난 속에서 어린 동생들을 위해 몸을 팔라고 다그치는 엄마가 두려워 결혼한 첫 남편은 부자였지만 ‘자기 외의 딴 사람의 삶에 대한 상상력이 철저하게 막힌’ 돈벌레였습니다. 지방 대학 강사인 두 번째 남편은 공부도 게으른 주제에 서울의 알아주는 대학에서 자기를 불러 주지 않는다고 툴툴대며 허구한 날 “남들은 처가 덕을 잘도 보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세 번째 지금 남편은 “우리도 한밑천 잡아 잘살아보자”라며 이 사업 저 사업 뛰어다니고 굼뜬 ‘나’를 질책합니다. ‘나’는 이도 저도 징그러운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일본어를 배우러 간 종로 대로에서 누구도 아닌 자기 안의 부끄러움이 소멸 직전임을 깨닫습니다. 학원 간판 밀림 속 그 어디에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곳’이 없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세속의 천사’라는 단편소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치욕스러운 기억을 고백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자긍심을 가지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패전 후 일본에 자신이 저지른 부끄러운 짓을 하나하나 끄집어낸 ‘인간 실격’을 던져 놓고 강물로 뛰어든 작가답습니다. 누구나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면 숨기고 싶기 마련입니다. 자기는 고고한 척 남의 부끄러움을 까발리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인간이기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요? 나는 올해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가? 나의 부끄러움을 알고 있는가? 세밑이 다가오는 이 시기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은 시금치라도 한 단 사서 부끄러움의 미네랄을 보충해야겠습니다.
(출처 ; 하이쿠로 읽는 일본,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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