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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하나님
시편 116:1~11
성경에서 ‘앎’이란 인격에 기초한 관계를 말합니다. ‘앎’이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지를 창세기 4:1이 귀띔합니다. “아담이 안해 하와와 한 자리에 들었더니 안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다음과 같이 웨쳤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이 성경 구절에서 ‘한 자리에 들었더니’의 히브리어가 ‘알다’를 의미하는 ‘야다(ידע)입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부부만큼 친밀한 관계는 없습니다. ‘앎’이란 인지하고 이해하는 단순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상의 깊이를 갖습니다. 인격적이고 친밀하며 무엇보다 약속에 근거합니다. 우리의 지식이 사변화 되거나 주변화되는 일이 잦습니다. 정보의 양은 많아져도 삶이 팍팍한 이유가 진정한 지식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같은 이치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신학 서적을 많이 읽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고 교회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안다’거나 ‘신앙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내 삶의 준거로 삼고 자기 행동의 원칙으로 삼는 일이 없다면 그런 신앙은 미신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미신이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사실은 부적입니다.
“내 령혼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넘어지지 않게 보호하시니 내가 생명의 땅에서 여호와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116:8~9)
구원이란 체득한 지식입니다. 그래서 관념적이지 않습니다. 시인은 죽음의 고통과 슬픔에서 하나님을 앙망하여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어려울 때 도우시는 분이라고 인식하고 그 지식에 터하여 구원을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망에서 구원하시며, 눈물을 거두시는 분이며 넘어짐에서 건지십니다. 고달픈 삶의 현실이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곁에서 지켜주십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 하나님은 시인 곁에 언제나 계셨듯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 삶을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너그럽고 의로우신 분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 미약한 자를 지켜주시는 여호와이시라. 가엽던 이 몸을 구해 주셨다.”(116:5~6).
2024. 12. 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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