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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판단이 참되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67 추천 수 0 2024.12.29 09: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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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8:15-19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15-19: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정확한 판단을 하려면 하나님의 지식을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7:24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판단은 공의의 판단이다. 여기에는 성령님의 증거가 들어있다. 하나님의 공의의 판단은 진리 따르는 중심, 진리 따르는 양심을 보신다. 진리 따르는 양심에서 나오는 판단은 공의의 판단이요, 이 공의의 판단은 영원히 옳은 거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도 예수 믿고 이 판단을 가졌다면 영원히 변치 않는 기준을 가진 거다.

 

오늘날 기독교계를 보면 소위 이단 감별사라는 분이 어떤 사람을 향해 이단이라고 했다가 이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고 하던데, 이런 판단은 공의가 아니다. 공의의 판단은 죽음의 선을 넘어가기까지 그대로 적용이 되는 변치 않는 기준이다. 그런데 8: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변질성이 있는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의 판단이 옳지 않다고 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기 교단이나 교파에 속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하거나 이단시 하는 경향이 많다.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이나, 단체가 크고 작은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이상하게 보는 것은 공의로운 판단이 아니다. 공의의 기준이 아니다. 공의의 기준은 말씀의 이치로 들어간다. 자기는 성경도 모르면서 자기 교회가 속한 교단이나 교파가 아니면 이상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다른 교회 교인과 대화를 하면서 어느 교단이나 어느 교파에 속했느냐고 묻는다면 이건 기준부터 잘못된 거다. 이렇게 묻는 사람이 속해 있는 교단과 교파가 기존의 교단이나 교파에서 싸운 후에 나눠져서 생긴 단체라면 자기가 속한 교단이나 교파가 성령을 따라 싸워서 만든 거냐? 이게 예수정신이냐? 오늘날 교회가 자기 기준에서 남을 정죄하기를 좋아한다.

 

우리의 판단은 공의의 판단이니 공의의 판단은 흉을 보려는 게 아니라 방향과 목적을 바로 알게 해서 하나님 앞에 바로 놓인 사람이 되게 한다. 공의의 판단은 사람을 인간창조의 구원목적으로 바로 잡는 거다. 하나님께서 외부적인 조건을 가지고 공의라고 하시느냐? 인간의 생지나 생시나 생황은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으로 주신 거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던, 부잣집에서 태어나던, 한국에서 태어나던, 미국에서 태어나던, 어떤 모양으로 태어나던 한 마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주권적인 뜻이 들어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은 각자가 이룰구원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주신 거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공의에 속한 거다. 믿는 우리는 이 점을 알고 자기의 환경과 처소를 탓하면 안 된다.

 

교회가 공의의 기준성이 아닌 것을 기준적 지식으로 가지게 되면 마귀의 짓이 나오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해도 그 영은 죽어있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공의도 없고 진리도 없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거듭난 영이 들어있고, 그 양심에는 진리가 들어있다.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보내신 분과, 보냄을 받은 자는 떨어져 있기 마련인데 함께 계신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냐? 이 말이 두 분이 떨어져 있었는데 같이 합쳐졌다는 말이냐?

 

예수님은 신령천국에서 물질세상인 이 땅에 오셨는데, 신령세계와 물질세계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질적 차원적으로 다른 세계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보냄을 받았지만 보내신 분과 같이 있다고 하는 것은 영적인 개념으로 하는 말이요, 가치판단과 소원 목적과 평가성과 의사성이 두 분이 동일하다는 거다.

 

두 분의 의사성이 같은 것처럼 오늘날 교회 인도자들의 가치판단 평가가 주님과 같다면 질적인 면에서 주님과 단일이요 동일이다. 교회 인도자가 주님의 인도로, 주님의 역사로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면 교회를 아버지의 말씀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인도한다. 이게 구원이다. 이게 참된 증인이다. 참된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 궁극적인 구원의 효력을 지닌 말씀이니 목사가 이것을 주지 않는다면 거짓된 종이요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다. 세상에 속한 말에는 구원이 없다.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이 말씀을 보면 질적으로 하나님과 단일인 예수님의 증거를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시는구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증이 된 이 말씀을 무시하면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말세에는 노아홍수 때와 같고, 소돔 고모라 때와 같고,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고, 말세에는 거짓된 종들이 많이 나온다라고 했는데 말세지말인 오늘날 전 세계의 목사님들의 메시지가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참되다고 보증을 해 주실까, 아니면 이방세상이 보증을 해 줄까, 아니면 세상 넓은 길로 가는 교인들이 보증을 해 줄까?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17:6에서 한 사람의 증인으로 사람을 죽이지 말고 두 사람의 증인으로 죽이라고 했고, 19:15에서는 한 사람의 말을 듣고 확정하지 말고 두 세 사람으로 확정하라고 했고, 35:30에서는 한 증인의 말만 듣지 말고 여러 사람의 말을 들으라고 했는데, 여기의 증인을 세상의 일반적인 생각으로 보면 안 된다. 성경은 성령으로 기록이 되었으니 성령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성경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입게 하려는 것이므로 세상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기준으로 성경을 풀면 안 되고 우리의 온전에 두고 풀어야 한다. 사람의 언행심사가 진리와 성령님으로 나오는 게 두 증인이요,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신앙의 세계에서는 누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하나님의 본질을 놓고 진리와 성령님께서 인정을 해 주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공의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세상에서는 안방에서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서 아내의 말을 들으면 아내의 말이 옳다고 하는 말이 있으나 성경으로 보면 양쪽이 다 틀린 거다. 왜냐? 세상사람들은 어떤 말을 해도 하나님의 본질은 없고 개인적인 감정을 기준으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이 바로만 들어있다면 이 사람은 한쪽의 말을 들어도 옳고 그른 걸 알 수 있고, 다른 한쪽의 말을 들어도 옳고 그른 걸 알 수 있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준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다.

 

북조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증인을 세울 때는 두 사람을 세우라고 하는 성경대로 두 사람의 증인을 세우고 이세벨의 계략을 따라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다. 성경대로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서 빼앗았지만 아합 왕은 남의 포도원을 빼앗은 도둑이다. 그러니까 악한 자들은 성경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짓을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한 사람의 말이던 여러 사람의 말이던 진리와 성령의 감화가 들어있는 말이냐? 하나님의 본질이 들어있는 말이냐?’ 하고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를 봐야 안 속는다.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성경의 증거는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님의 증거인데, 이 증거는 창세 전,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온전으로 닮는 구원에 관한 증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증거해도 우리의 온전에 관한 증거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증거하는 것도 역시 우리의 온전에 관한 증거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감화 감동으로 인도하시는 것도 우리로 하나님의 온전을 덧입게 하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다른 아이를 향해 너 저 애를 보느냐? 저 애가 공부를 잘 한다더라라고 하면 누가 이 말을 듣는 거냐? 아들이다. 그러니까 아들의 마음을 격동시키기 위해 다른 집 아이를 칭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를 칭찬하는 것은 우리로 보고 듣고 판단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들어지라는 격동성이 들어있는 거다.

 

모든 창조물의 존재목적이 우리의 구원, 즉 온전을 위함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지고, 비가 오고 맑아지고 하는 것도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다. 천하 만물 구석구석마다 조목조목마다 우리의 구원도리와 이치를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의 구원을 깨닫는 재료가 아닌 게 없다.

 

구약성경에서 장차 메시아가 오실 것을 증거 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을 증거 했고, 모든 성경이 우리의 온전을 염두에 두고 세상의 창조와, 세상 마지막과, 천국을 증거하고 있다. 다 나의 구원을 위한 증거다. 나를 빼놓은 증거는 없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의 대상자로서 얼마나 신경을 쓰고 염려 걱정을 하시는지를 생각해 봐라? 어느 나라 대통령이, 어느 부모가 나에게 이런 신경을 쓰느냐?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다. 그럼에도 자기의 존재가치를 무시하고 짓밟고 산다면 모든 만물이 너를 무시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증거했고, 사도들이 우리의 구원을 증거했고,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해지라고 우리의 구원을 증거하고 있다. 한 사람이 증거를 해도 우리의 구원이요, 만 사람이 증거를 해도 하나님의 온전에 관한 우리의 구원을 증거한다. 말씀을 전할 때 진리말씀을 따라 자타의 이룰구원을 위한 증거를 하는 자가 있고, 비구원적인 것을 증거하는 자가 있는데, 자기가 진리에 입장과 소속이 되어서 하던, 비진리에 입장과 소속이 되어서 하던, 의식을 가지고 하던, 대립적으로 하던 하나님께서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구원에 관한 증거가 되게 하신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의 경우에는 무엇을 하던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는 거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만사를 성도들의 구원목적으로 돌리시기 때문에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불신자들의 언행을 보고 구원도리와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결과적으로 성도들의 구원목적에 이용물이다. 이런 면에서 지혜로운 성도는 세상의 모든 것을 붙잡고 자타의 구원에 이용을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고, 이게 예수 믿는 정신이요, 이치요, 지혜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인 구원에서 벗어난 자가 없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있는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지도자들인데도 이것을 하나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성경을 가지고 무엇을 증거 했겠느냐?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복 받는다. 만사형통 된다이게 예수증거냐? 이건 예수증거도 아니고, 천국복음 증거도 아니다. 한 마디로 사단 마귀가 교회를 유혹 미혹하는 거다. 성도를 물질을 가지고 꾀이는 것은 유혹이고, 그릇된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생명 길로 못 가게 하는 것은 미혹이다. 이 두 가지가 하나씩 오기도 하고, 두 가지가 같이 올 수도 있다.

 

모든 인생은 자기의 사는 길이 있다. 자기 생활의 목표점이 있다. 이게 자기가 세상을 사는 자기의 길이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어느 길로 가는 거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의사단일 길, 좁은 길, 생명 길이다. 이게 구원의 길이다. 이게 인간창조의 목적에 맞게 사는 거다. 다른 길은 구원의 길이 아닌 심판 받고, 형벌 받고, 불에 녹아질 길이다.

 

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아들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는 아들을 알고. 알면 자랑을 하고 소개를 한다. 그러면 안다는 게 무엇이냐? 질적 본질적 인격적 속성적 성품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증인은 이 앎의 본질을 증거한다. 돌려서 말을 하면 하나님의 본질을 알아야 증거를 하는 거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좋다. 나쁘다하는 것은 껍데기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보고 말을 한다. 예수를 안다고 하는 것도 주님의 마음의 중심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라고 하신 것은 영적인 면을 두고 하신 말씀인데 이들은 육적인 개념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다른 분인 것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니 서로 말을 해도 의중이 안 통한다. 한 집안 식구라고 해도 예수를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있으면 안 믿는 사람은 껍데기 위주로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또한 예수 믿는 사람과는 사는 방향과 목적이 다른 고로 서로 통하지 않는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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