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
경건한 자들의 죽음
시편 116:12~117:2
인류 역사란 힘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기록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인류는 식량을 더 차지하기 위하여 싸웠고, 나중에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기적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힘을 남용하였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은 자기 나라의 이기주의를 위하여 다른 나라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힘없는 나라들은 어쩔 수 없이 그에 편승하지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행복과 번영이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세상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나도 잘 살고 너도 잘사는 세상은 실현 불가능할까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힘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힘을 가지고 세상을 호령하던 자들의 종말은 대개가 비극으로 끝납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 그랬습니다. 강한 것이 위대한 게 아니라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습니다. 거대한 나무는 태풍에 부러지지만 갈대는 살아남습니다. 산중왕 호랑이는 멸종 위기인 반면 노루와 고라니는 여전히 번성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강자의 판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경건한 자들의 의지입니다.
“여호와께 충실한 자의 죽음은 그분께 귀중하다.”(116:15).
죽음이야말로 삶의 역동적 진리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죽어야 싹을 틔웁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그 역설에 기초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에 의하여 희생되었습니다. 억울하고 무력합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세상을 살렸다는 사실은 역설입니다. 주님은 인류가 받아야 할 죄의 짐을 홀로 지고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였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하시므로 고달픈 삶을 사는 인류의 희망이 되셨습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응원하십니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너희 모든 나라들아, 그를 칭송하여라. 그의 사랑 우리에게 뜨겁고 그의 진실하심 영원하시다. 할렐루야.”(117:1~2).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세상살이가 버겁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죽음이 우리를 살렸고, 경건한 자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십니다.
2024. 12. 29 주일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