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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8: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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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8장 19절-20절: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19절: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묻는 거다. 그러면 예수님의 아버지가 어디 계시느냐? 왜 예수님께서 당신을 ‘인자’나 ‘아들’이라고 하는 거냐? 하늘나라에 가서도 이런 표현을 하실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거냐? 우리를 진리로 나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인들이 교훈적인 면에서 질을 생각하지 못하고 목사님을 ‘영의 아버지’ 라고 하기도 하고, 사모를 목사님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을 해서 ‘영의 어머니’ 라고 하기도 하는데, 목사나 사모가 받듦을 받는 자냐,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드는 자냐? 그렇지 않아도 사람 속에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타락성이 들어있는데 목사나 사모를 우상화 하듯이 하면 안 된다.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따로 사는 것처럼 예수님과 하나님도 따로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라고 물은 거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영적인 면, 영적인 뜻을 두고 말씀을 하시는데 이들은 영적인 면은 전혀 모르는 거다. 하나님은 신이시니 신에 대해 말을 하면 당연히 영적인 면으로 말을 하는 건데 이들은 육의 생각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육적으로 받아들인 거다.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해도 영적인 뜻을 두고 하는 말씀인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에게 영적으로 말을 하면 영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육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도무지 주님과 질적으로 맞지 않는 육적인 것을 위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육적으로 믿는 거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이들은 조상들로부터 받은 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오시리라는 메시아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알고 있을까? 성경도 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오늘날 기독자들은 예수님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을까? 알아야 믿고 따라가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모르고서 어떻게 따르느냐?
이 땅에서 33년을 살으심과, 사시면서 고난을 받으심과, 죽으심과, 부활 승천 등등 예수님의 전 삶의 구석구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이 일을 하신 그 분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고작 알고 있다는 게 성문적 역사적인 것만 알고 있지는 않느냐? 고고학적 역사적으로 발굴된 것을 성경에 붙여서 성경을 증거한다면 이건 마귀 짓이다. 이런 것을 좇는 사람은 자기 딴에는 그런 것들이 사실적이니까 생동감이 있겠지만 이건 이미 믿음의 기준이 달라진 거다.
OOO교회에서 다른 성경은 금가락지와 같지만 로마서는 거기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같다고 한다는데, 이 말은 로마서가 어떤 성경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다. 로마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다른 성경은 안 중요하냐? 성경을 제작하는 사람도 성경을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빨간색으로, 다른 것은 검은 글씨로 인쇄를 하는 거다.
성경에 마귀의 말도 있느냐? 성경에 마귀의 말도 있다고 한다면 성경 중에 어떤 게 마귀의 말이고, 어떤 게 하나님의 말이냐? 마:에서 마귀가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하는 것은 마귀의 말이다. 그러나 마귀의 말이라고 해도 성경에 기록이 된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마귀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냐?
성경에 마귀의 말도 있다고 한다면 기록영감을 받은 사도가 성경을 기록할 때 마귀가 옆에 있다가 ‘이 말은 내 말이니 내가 기록할게’ 하고 마귀가 기록한 게 마귀의 말이냐? 아니면 성령님의 기록영감을 받은 사람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군데군데 마귀의 말도 집어넣은 거냐? 아니면 기록영감을 받은 선지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하다가 어느 순간에 성령의 감화가 없어질 때 마귀가 영감을 받아서 기록을 한 거냐?
성경에 마귀가 한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면을 두고 하는 말이냐? 그 이유는 예를 들면 마귀가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한 내용이 성경에 기록이 되었는데 이는 마귀는 예수님께 한 것과 같은 시험을 우리에게도 하는 것이니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 시험을 다 이기신 것을 배워서 살아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성경 기록자를 통해 마귀의 말을 기록케 한 것이기 때문에 마귀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거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은 우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게 하려고 기록한 것이니 성경에 기록된 마귀의 말에도 우리의 온전을 위한 교훈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 면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거다.
성경에 마귀의 말이 기록된 것은 마귀는 우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 말인데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따라가지 말라는 뜻으로 마귀의 말을 성경에 기록하게 한 거다. 이렇게 해 놨는데도 믿는 사람이 마귀의 말을 하는 거짓 종들을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거다. 자기가 강도나 도둑에게 돈도 갖다주고 먹을 것도 갖다주면 이 강도나 도둑이 나를 향해 ‘참 좋은 사람이다. 내가 너를 닮아야지’ 라고 하겠는지, ‘내가 힘을 더 키워서 강제로라도 더 많이 달라고 해야지’ 라고 하겠는지?
사람이 바꿔지는 것은 물질을 주는 데서 바꿔지는 거냐, 옳은 지식을 줘야 바꿔지는 거냐? 후자다. 그런데 세상의 지식은 이걸 모른다. 원칙이 사람은 옳은 지식을 받음으로써 바꿔지는 거다. 어느 지식을 받느냐에 따라 사람이 악해지기도 하고 선해지기도 한다. 또한 ‘자기가 얼마나 힘을 쓰느냐?’ 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신앙의 성격과 성분과 성질을 모른 채 성경을 성문적 표면적 역사적인 것만 주장하면서 자기는 육에 속한 신앙이 아니라고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신앙을 성격과 성분과 성질적으로 볼 줄 모른 채 문자적 글자적으로만 알게 되면 사람이 어디에 놓여지겠느냐?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시겠느냐? 성경은 인간 자체를 위해 주신 거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예수도 모르고,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도 모른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섬기겠느냐? 예수님은 아버지를 소개하고 아버지의 뜻을 가르쳐 주려고 신령세계 실상세계에서 오셨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알아야 아버지를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건데 육에 대해 가르치고 세상에서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이런 교회는 믿음이라고 하는 질이 붙을 수 없는 거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면 이들이 영적인 면을 부정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아버지를 향해 자신들의 육을 위해 도와달라고 하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마른 것을 통해 육적 세상적인 신앙은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으니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하면 안 된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신앙을 가르치게 되면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가 도매금으로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나쁜 쪽으로 심판을 하실 때 자기가 그 심판의 모델 케이스가 되면 안 된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우리로 이 말을 듣고 주님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를 빨리 깨달아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 아버지의 정신이나 소원 목적을 가지게 하려는 거다.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께 ‘아버지’ 라고 하면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왜 불렀느냐?’ 라고 해야 되겠는데 ‘넌 누구나?’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냐? 이건 아버지의 자식이면서 의사적으로 아버지와 안 통하는 거다.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면 상급을 못 탄다고 하는 교회가 있고, 상급을 못 타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교회가 있고, 일반 도덕성적인 선행을 안 하면 상을 못 탄다고 하는 교회가 있는데, 우리 교회는 ‘네가 안 고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들어서 너를 치고 들어올 거다’ 라고 한다. 이 말을 돌려서 들으면 ‘너는 온 세상보다 중요하다’ 라는 말이 된다. ‘해와 달이 너를 상치 못하게 한다’ 라는 말씀도 있는데, 이 말씀을 돌려서 생각을 하면 ‘네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해와 달을 들어서 너는 상하게 하겠다’ 라는 뜻도 들어있는 거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아들을 모르는데 어떻게 아버지를 알 수 있느냐? 예수님 앞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언행심사로, 이적 기사나 표적으로 천국의 일을 알게 해 주셨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언행심사나, 이적 기사나 표적만 아니라 부활 승천까지 보여주셨고, 또한 승천하신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당신의 이름을 걸고 증거를 하셨는데, 이 증거가 아브라함에게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다 이루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정확하게 믿게 하려면 먼저는 예언이 있고, 그 다음에는 이 예언대로 약속이 이뤄질 때 인격적으로 믿게 되는 거고, 이게 증거가 되는 거지 어떤 물건을 놓고 증거를 하게 되면 100% 속게 된다. 진리대로 된 증거라야 믿을 수 있는 거다. 그럼에도 아무리 증거를 보여줘도 인간이 안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의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꺾어서 억지로 믿게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심판은 피할 수 없다.
믿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질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거다. 하나님 아버지는 본질의 실상적 존재요, 예수로 통하지 않으면 이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하는 게 교회 인도자들의 책임이다. 그 중요성이 크다.
20절: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이 말씀을 성전 안 연보궤 앞에서 했는데도 예수님을 잡는 자가 없다고 한다. 이들이 진리를 가졌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잡혀주기도 하는데, 이건 구원의 의미이고, 그들이 진리가 아닌데도 그들에게 잡힌다면 우리의 구원역사의 의미로 잡혀주는 거다. 그러니까 잡은 자의 주권이 아닌 잡히는 자의 주권에 의해 잡히는 거다. 엄마가 아기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엄마가 아기에게 잡히는 것은 엄마에게 주권이 있는 거냐, 아기에게 주권이 있는 거냐? 엄마다.
내가 자타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상대를 보면서 나를 쳐다보는 것도 있고, 또 같이 있는 대중들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내 태도가 상대에게 나가는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안 알아줘도 오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입장에서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사람들이 보는 위주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많다. 이러면 신앙으로 못 들어간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잡히는 것은 구원섭리로 역사하시는 당신의 주권에 있는 거지 그들의 주권에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몸을 잡는다고 해서 예수님이 잡혀주고, 놓아준다고 해서 놓이는 예수가 아니다. 그 분의 주권 하에서 사랑하는 성도 자기를 위해 잡히고 안 잡히고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 봐라. 얼마나 든든한지? 성도의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은 당신의 마음대로 죽고, 당신의 마음대로 살아나고, 당신의 마음대로 부활하고, 그러니 얼마나 자유로우냐? 굉장히 자유롭다. 먹으려면 먹고 안 먹으려면 안 먹고, 죽으려면 죽고 안 죽으려면 안 죽고, 아무리 잡아 죽여도 더 안 죽을 자로 부활이 되어서 나오고, 참 자유롭다.
그런데 성전 연보궤 앞에서 가르치실 때 이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그들이 계속해서 헌금을 했다는 것인데, 헌금을 할 때 아버지의 아들을 알고 해야 헌금이 바로 될 텐데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른 채 한 거다. 지금도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없지 않아 있다. 예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면서 ‘교회에 나오면 헌금을 하는 건가 보다’ 하고 헌금을 하는 사람이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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