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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로에서 길을 잃다
여호수아 6:8~27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하여 여리고를 하루에 한바퀴씩 돌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중심으로 앞에는 일곱 명의 제사장이 숫양 뿔나팔을 불었고 무장한 선발대는 그 앞서갔습니다. 제사장들이 든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은 악기가 아니라 신호를 위한 도구입니다. 연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을 제어하는 신호였습니다. 모름지기 나팔을 불면 움직였고, 나팔소리가 멈추면 행진도 멈추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침묵하며 행진하였고 오직 나팔소리를 신호삼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함성을 지르지 말아라. 너희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여라.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말고 있다가, 내가 너희에게 '외쳐라' 하고 명령할 때에, 큰소리로 외쳐라.”(6:10)
오늘 우리 민족에게 이 나팔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평화와 조화와 의로움의 나팔소리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증오와 분열과 불의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교회 지도자인양하는 이들이 불어대는 반성경적인 나팔소리는 어지러운 세상을 더 혼란하게 합니다. 세상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종교가 세상을 타락시켜 몰락의 길로 안내하는 듯합니다. 진리의 신호가 없어서 혼란이 아니라 너무 많은 신호 때문에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길을 잃고 십자로에서 헤메고 있습니다.
일곱째 날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를 일곱 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를 신호로 큰 소리를 외쳤습니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이 진격하여 여리고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전에 정탐꾼을 숨겨주고 선대하였던 라합의 집을 구원하였습니다. “그 창녀의 집으로 들어가서, 너희가 맹세한 대로, 그 여인과 그에게 딸린 모든 사람을 그 곳에서 데리고 나오너라.”(6:22) 민족을 배신한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민족애는 궁극의 가치가 아닙니다. 민족애가 맹목적일 때, 민족애가 보편적 인류애보다 우선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민족애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포함될 때 의미를 갖습니다.
2025. 1. 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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