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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1-4510] 아름다운 것들, 고요, 현대 야만인, 현명한 사람, 저물녘, 광풍이 불어...
만가지생각 최용우............... 조회 수 14 추천 수 0 2025.01.10 10:25:17
[원고지 한장 칼럼]
4501.아름다운 것들
꽃과 풀과 하늘과 나무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의 얼굴과 생김새가 다 다른 것이 어찌나 신기한지. 그런데 왜 시궁창만 들여다보며 ‘더러운 세상’이라고 할까?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흠을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데. 이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하구나!
4502.고요
집안에서 벌레 한 마리라도 발견하면 기겁을 하면서 파리채로 때려잡습니다. 그런데 어째 마음속에 우글거리는 벌레들은 가만히 둡니까? 근심, 걱정, 염려, 의심 같은 것들은 우리의 생각을 갉아먹는 마음속 ‘벌레’입니다. 이런 벌레들을 박멸하는 방법은 ‘고요’입니다. 가만히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면 벌레들이 당황하다가 도망쳐 버립니다.
4503.현대 야만인
지금 세계는 크고 작은 ‘전쟁’을 치루면서 젊은이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과 노약자가 희생되고 있습니다. 입에 담기 힘든 폐륜적인 일들이 백주 대낮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문명인인가? 현대인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 절대로 동의가 안 됩니다. 현대인은 문명의 옷을 입은 미개인, 또는 야만인입니다.
4504.현명한 사람
행복과 불행은 크기가 미리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만들어 후다닥 처리해 버립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스스로 크게 만들어 고민 속에 빠져서 머리털을 쥐어 뜯습니다.
4505.저물녘
예수님은 저물녘에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갔습니다.(막4:35-36)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배를 띄우고 배 위에서 전하셨습니다. 저물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상태에서 제자들에게 그냥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탄 배는 석양 속으로 서서히 사라집니다.
4506.광풍이 불어
바다에서 광풍이 불어 배에 물이 들어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막4:37) 제자들은 풍랑이 이는 바다를 보며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무서웠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래서 인간입니다.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를 깨운 것입니다.
4507.예수님을 깨움
제자들이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급히 깨웠습니다.(막4:38) 배 안에서 풍랑 때문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고 예수님은 쿨쿨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육적으로는 깨어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잠들어 있었고, 예수님은 육적으로는 잠들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깨어 있었습니다. 영이 깨어 있으면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입니다.
4508.바람을 제어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에게 잠잠하라 하니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막4:39) 예수님에게는 창조의 원초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힘을 완전히 제압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이 세상의 악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힘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도 믿음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4509.믿음 없음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셨습니다.(막4:40)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다 맡겼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급하니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넘어지고 두려울 때마다 예수님을 불러야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라는 말은 ‘구하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4510.누미노제
제자들은 ‘예수, 그는 누구인가?’하고 두려워합니다.(막4:41) 풍랑을 보고 두려워한 것이 ‘육적인 두려움’이었다면 예수님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것은 ‘영적인 두려움’ 즉 ‘누미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도 ‘누미노제’의 경험이 증명합니다. ⓒ최용우(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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