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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묻지 않고 한 일이지만…
여호수아 9:1~15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아이성을 수중에 넣었다는 소식이 인근 각처에 전해졌습니다.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등 그 땅에서 이미 오랫동안 살고 있던 부족들은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대항할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누구라도 그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선택한 이들도 있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그러하였고, 기브온 주민들이 그랬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은 먼 길을 걸어온 것처럼 꾸며 이스라엘을 속였습니다. 기브온 입장에서는 굴욕적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과 종주권 조약을 맺어 생존을 이었습니다. 종주권 조약이란 고대 근동에 일반적이었던 종주와 봉신 사이의 상호의무를 규정합니다. 종주는 봉신을 보호하며 봉신은 종주에게 충성하여야 합니다.
저항할 것인가, 언약을 맺을 것인가를 분별하여야 합니다. 저항에 당위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도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을 빼앗긴 바 있습니다. 36년간 일제강탈기를 겪으며 우리는 치욕과 서러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많은 지식인과 사회지도층이 일본제국주의의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가느다란 독립의 희망을 이은 애국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이스라엘과 가나안 부족 연맹, 그리고 기브온 사람의 모습을 해석하기가 난감합니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부족동맹을 맺고 저항한 자들은 멸망하였고, 언약을 맺은 이들은 생존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민족주의 개념이 강하고, 이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서 그렇지 구원사적이고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조화와 타협이 굴욕과 무능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스라엘을 모델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반대하고 대항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기꺼이 그 영역에 들어와 은총의 세계에 속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회중의 대표들은 여호와의 허락을 얻지도 않고 그들에게서 량식을 받았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들과 우호관계를 맺기로 하고 그들의 목숨을 보장한다는 조약을 체결해주었으며 회중의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맹세하였다.”(9:14~15)
비록 여호와께 묻지 않고 한 성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이 기브온 주민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영역에 제한은 없습니다.
2025. 1. 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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