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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월요 편지 3577] 2025년 1월 13일 월요일
제 목표는 건강한 김창옥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월 13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곳 김포는 어느 정도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제2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의 멘토는 화이트 목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 무렵, 화이트 목사의 TV 설교를 듣고 감동받은 트럼프가 먼저 화이트 목사에게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뉴욕으로 초대한 트럼프가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화이트 목사는 ‘당신의 영혼이 필요하다(I need your soul)!’고 답함으로써 트럼프를 더욱더 감동시켰다고 합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제 강사료는 한 시간에 2만 원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힘들기보다는 재미가 있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돈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반지하방에서 살았는데, 화장실이 집 안에 없어 공동 화장실을 써야 했고, 에어컨도 없고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가는데 길가에 쓸만한 소파가 버려진 걸 보았습니다. 이걸 가지고 가면 바닥의 냉기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존심은 세어서 남들이 볼 때는 가져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가 가져갈까 봐 걱정은 되니까 주변을 계속 배회하다가 연기 연습을 하는 척 배달하는 사람 연기를 하면서 꾸역꾸역 들고 갔습니다. 그냥 걸어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그것 머리에 이고 걸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단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때를 지나오긴 했지만, 저는 한 번도 강연으로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스타강사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스타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고 강사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건강한 김창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영화배우 일을 곁들여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재미있는 김창옥이 되고 싶어서 배우를 택한 것이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김창옥이고 싶습니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에게는 굳이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저한테 물었습니다. 제 묘비에 뭐라고 씌어 있기를 바라느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웃고 사람들과 함께 울었던 김창옥, 여기에 잠들다.’ 사람들을 웃겼고 울렸던 김창옥이 아니라, 같이 웃었고 같이 울었던 김창옥, 그러니 제 이름은 ‘함께 웃고’와 ‘함께 울고’입니다. 이것이 저의 소망입니다.(출처; 지금처럼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김창옥)
●다른 사람이 행복해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퍼할 때 함께 슬픔을 나누십시오.(롬12:15)
●함께 시간을 보내고, 즐거움을 나누고, 사랑한 기억은 우리 마음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효모리 도모코)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시 한 걸음
‘지루한 천국’보다는 ‘재미있는 지옥’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등바등하는 안간힘과 왁자지껄한 대소동도 삶의 에너지가 충만한 탓이라 여겼습니다. 폐허 위에서 일군 번영으로부터 ‘K컬처’의 만개까지도, 이악스럽게 타인과 경쟁하며 자기 몫을 찾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태어나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이 나라를 꽤나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뚜렷한 사계절’은 기후 위기로 경계가 무너지고(솔직히 사계절이 뚜렷한 게 장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금수강산 옥토낙원’은 기실 자원이랄 게 변변찮은 산악과 분지가 대부분입니다. 누대에 이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외침을 당했으니 보따리 잘못 푼 단군 할아버지를 탓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지정학적으로 불리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라면, 그 이름도 거창하고 거룩한 애국 애족이 아니라 운명애에 가깝습니다. 이곳에 태를 묻은 필연적인 운명을 감수하며, 행위(doing)보다는 존재(being) 그 자체로 긍정하는 일. 쉽게 말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이기에 자식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남들보다 인품이 좋고 재산이 많기에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이치와 같습니다. 못나고 부족해도 내 자식이고 내 부모이고 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지칩니다. 신년 첫 칼럼을 쓰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지랄 발광 네굽질한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제는 물론 사회 전체에 충격의 잔흔이 낭자한 탓입니다. 계엄과 탄핵으로 고조된 스트레스가 항공기 참사로 임계점을 넘은 듯 지난 세밑만큼 우울한 때는 다시 없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투 다이내믹 코리아’에 욕지기가 났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애도의 시간이 없고 설득의 언어가 없습니다. 남 탓과 종주먹, 그리고 진영의 새된 구호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구무언이요, 침묵만이 가장 현명한 웅변임을 알면서도 마감일에 맞춰 꾸역꾸역 원고를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성일지언정 새해를 여는 글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의 절망이 아무리 깊어도 잇몸이 시리도록 사리물고 내일을 말해야겠습니다. 이 환란 중에 나의 비밀한 위로가 되었던 것은 남극 원정대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위치 추적 시스템을 통해 산악인 김영미 대장의 이동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허수아비 같은 적과 맞서 싸우고 있을 때 홀로 자신과 쟁투를 벌이며 그녀는 지금도 남극 대륙을 횡단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록과 함께 세계적인 산악인의 반열에 오른 김 대장은, 지난 11월 무보급 무지원으로 남극점을 지나 레버렛 빙하까지 도달하는 1,700킬로미터의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영하 수십 도의 설원을 하염없이 홀로 걷는 고독한 여정이 이삼일에 한 번씩 SNS에 게시되는데, 그녀는 가도 가도 끝없이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남극의 매력을 ‘정직함’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기술 없이 걷고 또 걷는 것이 남극을 온전히 느끼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그러하기에 고통스러운 여정일지라도 고행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08년 7대륙의 7번째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때 가져갔던 태극기를 펼쳐 들고 남극점 앞에서 활짝 웃는 사진 속의 김 대장을 따라 나도 웃었습니다. 어쩌겠는가.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이 난마 같아도, 삶은 정직하게 걸어야만 종착점에 닿을 수 있는 운명의 대륙이 아니런가요!
김영미 대장이 좋아한다는 문구는 생텍쥐페리의 자전적 소설 ‘인간의 대지’의 일부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살린 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다시 한걸음을, 항상 그 똑같은 한 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것 말이야.”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시 한걸음을 내디뎌 하루하루씩 살아내야 할 터입니다.(출처 ; 김별아의 문화산책,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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