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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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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8장 3절-9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간음 중에 있는 여자를 예수님 앞으로 잡아와서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는데, 이에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는데 뭐라고 썼을까? 땅에 글씨를 쓰는 것은 마음에 담으라는 건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쓰셨을까? 무엇이라고 글씨를 썼기에, 즉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넣는 게 뭐였기에 다 도망을 갔을까? 우리가 성경을 보거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각인되면 양심이 부끄럽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죄는 안 보고 남의 죄만 보는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죄를 못 본다. 남이 망하는 것보다 자기가 망하는 게 더 비참하고 심각한 건데 왜 자기는 안 보고 남만 보고 욕을 할까? 자기를 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거다. 남의 가슴을 쥐어박고 꼬집고 쑤시고 마음이 아프도록 하는 것은 자기에게 가시가 있다는 증거다. 좋은 밭을 만들려면 가시를 쳐버리든지 가을이 되어서 나무가 바싹 마르면 불을 질러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실 때 그들이 왜 도망을 갔을까?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는 거다. 예수님께서 땅에 글씨를 쓴 것을 보면서 자기의 양심이 자기의 죄를 증거하기 때문에 다 도망을 간 거다. 사람은 자기의 양심을 못 속인다. 진리 앞에서는 더 못 속인다. 진리 앞에서도 자기의 양심을 속인다면 이건 재앙이다. 형벌감이다. 자기 속에서 판단이 났는데 이 옳은 양심을 죽이면 재앙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구별하며 자기를 살펴야 한다. 자기를 살피는 자가 성자다. 하나님의 신이 이 사람과 같이 하신다.
눅:에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도끼에 찍혀서 불에 던져진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치시기 전에 그만큼 참으심이면 진노도 그만큼 크다. 인간은 자기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좋네 나쁘네’ 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를 볼 줄 모르고 남만 보인다면 선악과 따먹은 요소가 그대로 들어있는 거다. 사람이 안 바꿔졌다. 이룰구원 면으로 보면 사람이 구원이 안 되었다. 지옥에 간다는 게 아니라 학교에 들어가서 늘 0점만 받는 것과 같다.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비교도 해 보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채워나가고 성장시켜 나가면 밝은 사람이 되고, 강한 사람이 되고, 금은보석보다 값진 사람이 되는 건데 왜 이 생각을 못할까?
세상사람들이 물질을 좇지만 그 물질을 잡지도 못하고, 잡고도 내버리기도 하고, 잡고도 다 못 누리지 못하고 가기도 하는데 믿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보면서도 세상 물질적인 면의 경주는 빠르면서 왜 신앙 면의 경주는 할 줄을 모를까?
예를 들면 부모가 돌아가시면 형제들끼리 ‘네가 많이 가졌네. 나 좀 더 다오’ 하며 싸울 때 믿는 사람이 안 믿는 형제들과 다투려고 법 앞에 선다는 것은 믿는 너부터 잘못되었다. 다른 형제들이 아무리 정당하지 못하게 부모의 재산을 차지하더라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라. 그러면 더 잘 해주실 거다. 문제는 너부터 바로 안 된 상태에서 해결해 달라고 하면 너부터 얻어맞는다. 예수 믿으면서 이해타산이 자기부터로 되어있으면 믿음의 사람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을 통틀어서 보면 그 믿음의 성질이 아브라함의 신앙과 같은 사람이 있고, 이삭의 신앙과 같은 사람이 있고, 야곱의 신앙과 같은 사람이 있다. 이 외는 이방인이다. 이 중에 야곱은 물질욕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대표로 보여준다. 우리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세 분처럼 믿는 사람들을 각자에 맞게 치리하고, 통치하고, 형벌을 하고, 매질을 한다는 의미로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다. 이방인들에게는 이 하나님이 없다. 이방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죽었다. 하루아침에 소각장으로 들어간다.
신앙적인 면에서 자기 머리를 누가 밟고 지나가는 건지? 가수가 밟고 지나가는 건지, 배우가 밟고 지나가는 건지? 가수나 배우의 이름을 모르면 지옥에 가느냐? 우리의 대화거리는 성경에서 찾아라. 인생을 두고 대화를 하라.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중년이 되면 머릿속에 돈이 들어있고, 노년이 되면 놀이가 들어있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머리 위에 계시니까 자기 머리를 하나님처럼 중요하게 여겨라. 머리를 바로 써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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