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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5권] 위격들의 관계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1부 제5권 (39-43)
S.T Aquinatis 지음/정의채 옮김
348쪽 15,000원 바오로딸 1998.초판
39.본질과 비교된 위격들에 대하여
40.관계들 내지는 고유성들과의 비교에....
41.인식표징적(혹은 식별 표징적) 작용들과의...
42.하나님의 위격들 상호간의 동등성과...
43.하나님의 위격들의 파견에 대하여
39. 본질과 비교된 위격들에 대하여
①하나님에 있어서 본질은 위격과 같지 않다. 하나의 본성을 갖는 자주체는 하나뿐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실제적으로 같은 것들의 한 편이 다수화 될 수 있는 것은 다른 편도 다수화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는 하나의 본질과 세 위격이 있다. 그러므로 본질은 위격과 같은 것이 아니다.
②세 위격은 하나의 본질의 것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실체적으로는 셋이지만 합치로써는 하나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실체는 그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세 위격은 하나의 본질이 아니다.
③본질적인 명칭들은 세 위격에 대해 복수적으로 서술된다. ‘인간’이 ‘인간성’으로 표시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신성을 갖는 것으로서 표시된다. 그런데 세 위격은 신성을 갖는 삼자(三者)이다. 그러므로 세 위격은 세 신(神)들이다.
④‘하나님이 하나님을 낳는다’라는 명제가 참된 것이 되려면 구체적인 본질적 명사들이 위격을 지시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본질적 명칭들이 위격을 지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복수적으로 서술될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 명사로서 본질을 표시하는 것이지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⑤추상적으로 표시된 본질적 명칭들은 위격을 지시할 수 있다. 성부와 성자는 하나의 지혜이다. 그것은 양자가 하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 각각에 대해서는 마치 본질이 본질로부터인 것처럼 지혜는 지혜로부터이다.
⑥‘하나님은 세 위격이다.’ 혹은 ‘하나님은 삼위일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구체적인 본질적 명칭들에 대해 서술될 수 없다.
⑦본질적인 명칭들은 위격들에게 고유화(固有化)시키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무질서하게 하는 말’ 가운데에서 이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⑧성스러운 학자(박사)들은 본질적인 것들을(하나님의) 위격들에 적절하게 귀속시키지 못했다.
40. 관계들 내지는 고유성들과의 비교에 있어서의 위격들에 대하여
①하나님 안에서의 관계는 위격과 같은 것이 아니다. 한 위격 안에 여러 관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예컨대 성부의 위격에는 부성(父性)과 공발(共發) 혹은 공통적 영발(共通的 靈發 communis spiratio의 두 관계)이 있다. 그러므로 관계는 위격과 같은 것이 아니다.
②위격들은 관계들에 의해 구별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절대적인 것은 관계적인 것보다 더 먼저 것이다. 하나님의 위격들의 구별은 맨 첫 번째 구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격들은 관게들로 말미암아 구별되지 않는다.
③지성의 추상작용으로 위격들에서 고유성들 내지 관계들이 제거되어도, 자주체들은 여전히 남는다. 어떤 것이 어떤 것에의 첨가로 인해 관련된 위치가 설정되는 경우 그 어떤 것은 그것에 첨가되는 것이 제거되어도 이해될 수 있다.
④인식표징적 작용들이 고유성들에 선행하여 이해된다. “성부는 항상 성부다. 그것은 항상 성자를 낳기 때문이다.” 낳음은 개념상으로 부성에 선행한다.
41. 인식표징적(혹은 식별표징적) 작용들과의 비교의 위격들에 대하여
①인식표징적 작용들은 위격들에게 귀속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해 말해지는 것은 다 실체에 따라 말해지든가 아니면 관계에 따라 말해진다. 그런데 실체에 속하는 것들은 본질적 속성들을 통해 표시된다. 그러나 관계에 속하는 것들은 위격들의 명칭들과 고유성들의 명칭들을 통해 표시된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 이외에 인식표징적 작용들이 위격들에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
②인식표징적 작용들은 (자유)의지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골1:13)라고 한다. 그런데 사랑은 의지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성자가 성부로부터 출생한 것은 의지로 말미암은 것이다.
③인식표징적 작용들은 어떤 것으로부터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어떤 것이 그것으로부터 낳아지는 그것은 낳아지는 것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④하나님 안에는 인식표징적 작용들과 관련하는 능력이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위격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⑤낳는 능력이나 영기를 발하는 능력은 관계를 표시하고 본질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능력은 정의를 표시하고 능동적 능력이 작용의 근거이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위격에 관한 근거는 인식표징적으로 말해지기 때문이다.
⑥인식표징적 작용이 여러 위격들에게 종극(終極)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 안에는 낳아지거나 영기(靈氣) 발해진 여러 위격들이 있다. “성자는 창조주를 낳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낳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낳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2. 하나님의 위격들 상호간의 동등성과 유사성에 대하여
①하나님 안에 동등성은 하나님의 위격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동등성이란 ‘양(量)이 서로 같거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격들에는 크기도 없고 양도 없고 장소도 없고 시간도 없기에 ‘동등성’은 적합하지 않다.
②발출하는 위격은 그 근원과 더불어 -예컨대 성자가 성부와 더불어- 영원(共, 永遠)하지는 않다. 그 이유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근원을 가지는데 영원한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근원이 없다. 고로 성부도 성자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이라는 것이 없다.
③하나님의 위격들 안에 본성의 질서가 없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다 본질이거나 위격이거나 혹은 인식적 표징이다. 그런데 본성의 질서는 본질을 표시하지 않으며 위격들의 그 어떤 하나이거나 인식적 표징들의 그 어떤 하나가 아니다. 고로 하나님 안에는 본성의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④성자는 크기에 있어 성부와 동등하지(같지)않다. 성자 자신이 “성부는 나보다 크시다.”(요14:28)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고전15:28)라고 했다.
⑤성자는 성부 안에 있지 않고, 성부도 성자 안에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어떤 것으로부터 밖으로 나온 것은 그것 안에 있지 않은데, 성자가 성부로부터 나온 것은 영원으로부터라고 미가서1:2절에 말한다.
⑥성자는 능력에 있어 성부와 동등하지(같지)않다. 성자께서 스스로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5:19)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부는 능력에 있어 성자보다 더 크다.
43. 하나님의 위격들의 파견에 대하여
①파견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어떤 위격에게 적합하지 않다. 파견되는 자는 어떤 장소를 떠나 새로운 장소로 간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위격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
②파견은 영원한 것일 수 있다. 성자는 양태로 파견된다. 그런데 성자의 출생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파견도 영원한 것이다.
③하나님의 위격의 불가시적인 파견은 다만 성성(成聖)의 은총의 은사(선물)에 의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위격이 파견된다는 것은 그것이 증여된다는 것인데, 만약 하나님의 위격이 다만 성성의 은총의 은사에 의해서만 파견된다면 하나님의 위격 자체가 증여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은사들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이다.
④파견된다는 것은 성부에게도 적합한 것이다. 파견된다는 것은 그것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부는 자기 자신을 준다.
⑤불가시적으로 파견되는 것이 성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위격의 불가시적 파견은 은총의 은사(恩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은총의 모든 은사는 성령에 속한다. 그러므로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시적으로 파견되지 않는다.
⑥불가시적인 파견은 은총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구약의 선조들은 은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불가시적인 파견이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9)
⑦가시적으로 파견되는 것은 성령에게 적합하지 않다. 성자가 가시적으로 세상에 파견되었다는 것은 성자는 성부보다 작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령이 성부보다 작다고 읽혀지는 성경은 한 군데도 없다. 그러므로 가시적으로 파견되는 것은 성령에게 적합하지 않다.
⑧하나님의 위격은, 그것이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발출하는 위격에 의해서만 파견돈다. “성부는 누구로부터도 파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성부가 누구에게도 유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어떤 위격이 다른 위격으로부터 파견된다면 그것은 다른 위격에 유래되어야 한다.
-요약,정리-최용우
-월간<들꽃편지> 2024.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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