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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41 추천 수 0 2025.02.02 0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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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8:25-28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25-28: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내가 상대방을 향해 말을 하는 게 있고, 내가 상대방에게 말을 하는데 사실은 나를 향해 말을 하는 게 있고, 내가 상대에게 말을 하는데 내 입장도 아니고 상대의 입장도 아닌 제 삼자를 향해 말을 하는 것도 있다.

 

네가 행실이 그러면 세상사람들이 너를 볼 때 뭐라고 하겠느냐?’ 라고 하는 것은 누구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냐? 내 입장이냐, 상대의 입장이냐, 제 삼자의 입장이냐? 제 삼자의 입장이다. 그러면 내가 상대에게 말을 하는데 이 상대가 내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은 나에 대해 당신처럼 말을 하지 않더라라고 한다면 이건 누구의 기준에서 하는 말이냐? 내가 상대에게 제 삼자에 대해 어떤 말을 하니까 상대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 나는 내 마음대로 산다라고 한다면 이건 자기 입장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늘나라에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오냐라고 하시느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 동질이신데도 인간의 용어로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을 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듯이 예수 믿는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을 가지라는 뜻이다. 나의 구원이 아니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할 필요도 없고,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는 거다. 이 땅에서 우리로 들을 수 있게 이런 표현을 쓰심은 나의 구원을 놓고 하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오냐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오냐라고 하실까, ‘네가 누구냐?’ 라고 하실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뜻이 다 통하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하면 하나님을 부르는 그 속을 하나님께서 즉시 아시는데 만일 내가 아버지라고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통하듯이 그렇게 되겠느냐?

 

아버지와 아들할 때는 아버지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질적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면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주님과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적 결합이 되어야 아버지의 것을 받을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사와 별개다. 이 세상에서도 아버지가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자식이 실력이 없으면 그 재산을 물려주겠느냐? 실력이나 인격적 관계성이 되어있어야 물려준다. 주님의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에 보면 왕이나 사사의 직이 자식에게 이어지는데, 후대가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게 아니라 처음에는 잘했는데 후대로 갈수록 각도가 살살 벌어지다가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이르게 되는 것 볼 수 있다. 그래서 심판을 당했다. 교회에서도 어느 목사로부터 교훈의 질이 달라지기 시작을 하다가 후임으로 내려오면서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목사라도 이 목사의 신앙지식이 근원부터 다르면 교인들에게 다른 열매가 맺게 된다. 우리는 이걸 봐야 한다. 충성봉사나 열심을 내기 이전에 생각이 벌어지는 시점을 볼 수 있어야 크게 벌어지기 전에 바로 돌아설 수 있다. 교회가 인간이 중심이 되면 이것은 넓은 길이요 심판의 길이니 이 길로 계속 나가면 주님과 점점 벌어지는 거다.

 

교회가 일반적인 개념으로 세습을 하는 곳이냐? 목사의 아들이라고 해도 진리사상을 가졌느냐?’ 하는 게 중요한 거다. 모세는 아들 게르솜이 아닌 진리를 가진 여호수아에게 후임을 맡겼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업이고 구원의 사업인데 아무리 자기 아들이라고 해도 생명적 신앙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채 이질적인 신앙을 가졌다면 어떻게 이 아들에게 교회를 맡기겠느냐? 하나님의 집에 인도자를 함부로 세우면 안 된다. 과연 교회 인도자가 생명적 계대를 생각하며 자기를 돌아보는 건지, 아니면 땅이나 사고 건물이나 지어서 사람 많이 모으는 것에 생을 바치고 있는 건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언제부터를 처음부터라고 하는 거냐?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를 먹어라.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라고 한 그 때부터냐, 아니면 노아나 아브라함 때부터냐, 아니면 세례요한 때부터냐, 아니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그 때부터냐? 에덴동산에서부터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알고 문자적으로만 지켰고 가르쳤다. 성경을 계시적으로 봐야 하는데 역사적인 개념으로 보게 되면 진화론 식으로 풀게 된다. 성경을 보는 각도에 따라 사망과 생명이 된다.

 

26: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이 말이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동질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마치 예수님과 하나님이 별개의 존재로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들은 말을 세상에게 전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왜 이런 표현을 하시는 걸까?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참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참을 아시고 참된 분이라는 거다. 오늘날 목사로 말을 하면 자기가 참된 목사라면 말로 참되다고 해서 참된 게 아니라 참된 말이 나와야 참된 목사라는 증거가 되는 거다. 목사 같으면 참된 그 분으로부터 무엇을 듣느냐? 영원한 것, 불에 안 타는 것을 듣는다. 그런데 오늘날 거짓된 종들은 세상의 것을 가진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라고 한다. 거짓된 목회자는 자기 아버지가 거짓된 거다. 소원 목적이 거짓 것이요 불탈 것이니 이 사람의 하나님은 거짓되구나. 즉 하나님이 아닌 마귀를 섬기는 거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아버지의 것을 받고 있어야 자기의 아버지가 되는 거다. 이건 인격적이고 성품적이다. 인격과 성품이 아버지처럼 되지 않은 채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자기와 아버지는 별개다. 사람은 그 관계성이 인격 대 인격이다. 성도는 하나님과 인격적 성품적인 관계가 단일성으로 결합이 되어야지 이질로 되어있으면 거짓적인 관계가 되는 거다.

 

자기가 믿는 신앙이 참되면 아버지의 참된 그것이 자기에게 온다. 우리의 신앙은 절대 정확하고 공의로운 아버지의 것을 받는 거다. 이러면 어떤 판단을 해도 아버지의 판단이 나온다. 교회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무리의 판단을 가지고 있으면 이는 세상의 판단이고 마귀가 배후다. 생명적이 아니다.

 

세상에서 좀 가난하게 살더라도 하나님 앞에 잘만 보여봐라.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의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먼저 복을 받을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사람이 문제다. 내 속에 물질위주로 돌아가는 사상이 들어있으면 사단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거다. 세상의 것이 없는 것은 원통해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것에는 왜 가슴을 칠 줄 모를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데리고 가겠다라고 하시면 어떻게 할 참이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니라라고 했는데, 믿는 사람이 이런 말씀을 벗어난 생각과 활동을 하는 것은 죄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죄가 나온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죽을 병이 나았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을 보여줘야 하는데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사신을 통해 편지와 예물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니까 왕궁과, 나라 안에 있는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사자에게 보여줬다.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나타나서 무엇을 보여주었느냐고 물었고, 이에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라고 대답을 하자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라고 했다.

 

이후에 이사야의 예언대로 다 빼앗기고, 잡혀가고, 눈도 빼이고 했는데, 눈이 빼인 채 원수의 나라에서 왕 대접을 받으니 좋으냐? 이것을 신앙적으로 보면 믿는 사람이 사단에게 자기의 허점이 보여서 영의 눈이 뽑혀 나갔는데, 머리인 하나님이 잘려 나갔는데 세상에서 대우를 받으면 좋겠느냐? 이게 현재적 자기의 삶이다.

 

27: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셔도 결과적으로 보면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는 거다. 목사의 설교도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켜 말을 해야 한다. 주님을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 자랑이다. 그런데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자랑한다면 이건 아버지를 가리켜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는 자기 자랑도 들어있다. 세상은 제도나 명예를 배경 삼아서 하나님처럼 자랑을 하는데 우리는 말씀의 이치로 된 신앙실력으로 이런 것을 코가 납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께서 들림을 받은 후에, 올림을 받은 후에 그인 줄 알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본 후에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는 거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속에서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이것을 모르면 예수님을 모르는 거다. 한 마디로 세상을 세상만큼, 주님을 주님만큼 알아야 주님을 바로 알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이 세상을 세상만큼, 주님을 주님만큼 모르기 때문에 세상을 더 알아주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속에는 죄도, 죽은 것도 없다. 아직 덜 된 것도 없다. 지혜지식적인 면에서, 도덕성적인 면에서, 능력성적인 면에서, 오각의 오감성적인 면에서, 모든 가치판단 평가성적인 면에서 한 점이라도 죄에 감염이 되거나, 순간적 찰나적이라도 넘어졌다가 일어난 실수도 없다. 전부는 완벽하고 온전하고 승리다. 이 주님의 언행심사로 연관관계가 되는 것마다 살아나고, 살리고, 하나님의 의사단일이요, 생명이요, 영생이요, 100% 온전이고, 100% 완전이고, 100% 자체화 능력화 실상화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 속에 들어있는 죽지 않는 것을 알 때 예수 믿는 열심이 나오고, 믿되 바로 믿고자 하는 정신이 나온다. 우리가 이걸 안다면 그 분을 높일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그 분을 더 잘 알게 된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가르치신 대로 한 그것이 부활 때 완벽하게 열매로 나오는 거다. 주님께서 어떻게 살고 뭘 가르쳤다고 하는 게 부활을 통해 다 나오는 거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의 열매 속에는 신앙의 모든 맛이 들어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마지막 때에 부활은 필연적이고, 이 세상에 살면서 이미 부활하신 그 분 속에 들어있는 부활성의 모든 맛을 보는 거다.

 

우리가 몰랐을 때는 모르는 거지만 이제는 오늘날까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구비구비마다의 걸음걸이 속에 들어있는 나를 살리신 주님의 손길의 맛을 알겠느냐? 이것을 깨닫는 자에게는 자기가 살면서 겪는 모든 사건과 환경이 다 약이 되고 사는 게 되는 거다. 이런 세월이 오늘날 자기의 인격을 만든 게 아니냐?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하나님의 손길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원망이나 하면 이 사람은 희망이 없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이나, 백성들에게 하는 말씀이나, 어떤 말씀을 하시건 다 나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사건과 환경도 다 나를 위해 동원하시는 거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말을 한다면 이건 자기 스스로의 말이 된다. 선악과를 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지식으로 하는 말은 스스로의 말이다. 이건 이미 저주가 된 거다. 여기에서 세상자랑, 인간자랑, 물질자랑, 돈자랑, 학벌자랑이 다 나온다. 종교적 세상을 건설하는 것도 스스로의 말이다. 인간기준으로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이 아니다.

 

오늘날 거짓된 종들이 많다. 말씀대로 옳게 바르게 하려는 목사에게 그렇게 하면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 진리대로 하면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섞어가며 해야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라고 한다면 이게 누구의 말이냐? 주님은 어디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사람을 세우겠다는 거다. 이게 교회다. 그런데 오늘날 마귀 같은 말을 하는 목사가 얼마나 많은지?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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